1940년대에 박명재[1932년생] 씨는 구로동 지역에서 십대를 보냈다. 일제 강점기, 구로와 가리봉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로동이 시흥군 북면에 속해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박명재 씨는 시흥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요즘 말로 하면 ‘과외’를 받았다. 집으로 선생님이 찾아오는 과외가 아니라 마을에 있는 가리봉교회에서 만든 ‘...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몇 십 년 만에 도시화가 이루어진 가리봉동 여기저기에는 생채기와 같은 역사가 남아 있다. 교회에도 남아 있고, 나무에도 남아 있다. 학교 운동장에도 남아 있고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에도 역사는 남았다. “서울에서 무슨 마을 역사를 찾는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역사는 남아 있는 법이다. 산업화를 일궈 낸 젊은 여공들의 역사가...
가리봉동은 농촌 마을이다. 논농사를 짓고 밭을 일궈 온 것이 수백 년간 이어졌다. 그래서 물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가리봉동 농지는 말 그대로 천수답이었다. 하늘에서 비가 적당히 내리면 농사가 잘되니 먹고살기 좋았다. 하지만 가뭄이 들면 딱히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 배를 곯아야 했고, 반대로 물이 넘쳐 홍수가 나도 배를 곯아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