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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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을 무대로 하여 김선민이 제작한 단편 영화. ‘가리베가스’는 구로구의 ‘가리봉’과 라스베가스의 합성어이다. 「가리베가스」는 가리봉동을 떠나는 여주인공 선화의 하루를 그린 단편 영화로서, 가리봉 지역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2005년에 제작된 단편 영화로 상영 시간은 19분이다. 영화 전체는 핸드헬드로 촬영되었다. 각본 및 감독은 김선민 여성 영화 감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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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시인 박노해가 가리봉시장을 소재로 하여 지은 현대시. 「가리봉 시장」은 박노해가 1970~1980년대 구로구 가리봉시장을 배경으로 부근 공장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 자유시이다. 노동자 시인인 박노해[노동 해방을 뜻하는 필명]는 「가리봉 시장」을 통해 사회 변혁 운동의 세기이자 열정과 연대의 세기였던 1980년대를 통과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의 허기와 분노, 소박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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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가리봉동의 구로공단을 배경으로 하여 박종원이 이문열의 소설 『구로아리랑』을 각색해 제작한 영화. 「구로아리랑」은 소설가 이문열이 1987년에 발표한 소설 『구로아리랑』을 각색한 영화로, 구로공단을 배경으로 하여 구로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인간의 존엄성을 그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영원한 제국」[1995]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박종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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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발생하였던 구로공단 갱 사건을 소재로 하여 영화감독 이장호가 제작한 영화.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구로구의 구로공단에서 발생하였던 갱 사건, 즉 2인조 카빈 소총 강도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구로공단 갱 사건은 1974년 M-2 카빈 소총이 군에서 몰래 탈취되어 무장 강도 범죄에 사용되면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M-2 카빈 소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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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의 구로공단 여성 근로자를 소재로 하여 이두진이 작곡한 가요. 「긴머리소녀」는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의 윤초시 네 증손녀를 모델로 한 노래이자 1970년대 학업도 포기한 채 고향을 떠나 공단에 취업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린 누이들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이다. 노래의 배경에 대한 사연이 알려지자 각 공단에서 근로자 위안 공연 시 「긴머리소녀」를 부른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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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의 구로공단을 배경으로 하여 이세룡이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각색해 제작한 영화. 「내 친구 제제」는 브라질의 작가 바스콘셀로스의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 속 가난한 집안의 5살 소년 제제와 중년의 아저씨 뽀루뚜가의 주변 이야기를 한국 배경과 인물로 각색하였다. 1989년 7월 15일 개봉한 영화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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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시인 박노해가 구로공단의 노동 현장을 소재로 지은 시. 「노동의 새벽」은 1984년 풀빛에서 간행한 박노해의 첫 번째 시집 『노동의 새벽』의 표제 시로서 가리봉동 구로공단의 노동 현장을 비판한 시이다. 「노동의 새벽」은 고통스러운 노동 현실에 체념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결코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화자의 절규를 통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세상을 간절히 바라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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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시인 정명자가 동생을 소재로 구로공단의 노동 체험을 노래한 현대시. 「동생에게」는 정명자가 ‘노동에 질리고 가난에 질린’ 시적 자아가 동생에게 쓴 편지글 형식의 단편서사시이다. 정명자는 30여 년 전 국가의 호칭으로는 ‘산업역군’, 일상적으로는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이었다. 서울특별시 가리봉동의 구로공단에서, 평화시장에서 그리고 마산공단, 창원공단에서 밤을 낮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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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소설가 공지영이 구로구청 농성 사건을 소재로 하여 지은 단편 소설. 「동트는 새벽」은 대학생 주인공이 구로공단의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 후 겪는 고단한 일상과 집회[1987년 구로구청 농성 사건]에의 참여를 주된 서사로 하여, 노동자에 대한 신뢰와 연대감을 통해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이 되는 세상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공지영의 등단작이다. 「동트는 새벽」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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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를 배경으로 하여 이장호가 최일남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각색해 제작한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소설가 최일남의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각색하여 영화화한 작품이다. 1976년 대마초 혐의로 활동을 중단한 이장호의 첫 재기 작품이며,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의 「황혼열차」에서 아역을 맡은 후 「바람 불어 좋은 날」로 복귀하여 성인 배우로서의 전환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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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시인 김사이가 구로공단 노동자를 소재로 지은 현대시. 「반성하다 그만둔 날」은 구로노동자문학회 출신인 김사이의 첫 번째 시집으로 2008년 실천문학사에서 발행한 『반성하다 그만둔 날』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 시이다. 총 3연 18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속에서 술을 마신다/말을 새로 배우듯 조금씩 취해가며/자본가와 노동자를 얘기하다가/비정규직 부당해고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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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의 구로공단 여공을 소재로 하여 김응천이 제작한 하이틴 영화. 「불타는 소녀」는 1970년대 구로공단의 가난한 여공을 소재로 하였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간다는 해피엔딩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진다. 고교생과 얄개 시리즈 등 하이틴 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감독 김응천 특유의 낙천적 이야기 구조로 영화가 진행된다. 1978년 1월 25일 개봉한 영화로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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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유경순이 ‘구로 동맹파업’의 역사를 정리한 노동 수기집.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는 유경순이 구로 동맹파업 주역들의 출생 이후 현재까지의 개인사를 통해 시대를 재생한 산문집이다. 구로 동맹파업 주역들은 20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모여 ‘구로동맹파업동지회’를 결성하였다. 이에 노동운동 연구가 유경순이 그들의 역사를 정리하여 22년 만에 『아름다운 연대』와 『같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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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전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에 수록된 경기도 금천현 지도. 『광여도(廣輿圖)』의 편찬 하한 시점은 1800년이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전국 군현 지도집은 이 밖에도 『해동지도(海東地圖)』, 『여지도(輿地圖)』, 『여지편람』 등이 있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해동지도』와 비슷하다. 세계지도, 중국도·일본도 등의 외국지도, 「요계관방지도」, 「조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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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발간한 향토지. 『구로구지』는 구로구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사회·경제·문화·교통 등을 망라하여 구로구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구지이다. 구로구의 인문환경과 자연환경 등을 다룬 문헌은 조선시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을 비롯하여 다수가 있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한국지리지: 수도권편』에서도 구로구에 관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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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소설가 이문열이 구로공단의 노동운동 현장을 소재로 지은 소설. 『구로아리랑』은 이문열이 발표한 소설로서 한때 대학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이 소설은 노동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구로공단에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자백하는 형식으로 1980년대 구로 일대의 노동운동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 『구로아리랑』은 어느 대학생이 구로공단에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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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소설가 박범신이 외국인 노동자의 코리안 드림을 소재로 지은 장편 소설. 『나마스테』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네팔 남자와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한국 여자의 사랑을 중심 줄거리로 삼아 외국인 노동자 문제, 인간의 구원 등을 다룬 박범신의 장편 소설이다. 꿈의 땅 한국이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은 것과 준 것을 네팔 출신 남자와 한국인 여자의 사랑을 통해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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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공선옥이 쓴 노동계급의 순수함과 위대한 모성을 보여준 소설. 『수수밭으로 오세요』는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강필순이 첫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의사 남편과 재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공선옥의 장편 소설이다. 구로동은 주인공 강필순이 열여섯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머문 공간이다. 공단 사거리 골목 시장 부근 필순의 거처를 묘사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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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소설가 신경숙이 구로공단의 체험을 토대로 지은 노동 소설. 『외딴 방』은 군사정권 말기에 구로공단의 동남전기주식회사에서 일하면서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던 3년 남짓[1978~1981]의 세월에 관한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이다. 『외딴 방』은 외딴 방에서 외롭게 죽어간 한 가여운 넋에 대한 진혼가라 할 수 있다. 신경숙은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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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소설가 최인호가 2인조 강도 살인 사건을 모델로 하여 지은 장편 소설. 작가 최인호는 1974년 구로동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종대·문도석의 카빈 2인조 강도 살인 사건에 관한 기사를 접한 후 소설을 구상하였다. 그로부터 삼사년 뒤 이종대의 배다른 동생인 이종세를 만나 친분을 쌓으면서 본격적으로 『지구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연재 도중 정보기관의 압력으로 베트남 전쟁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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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1956년생] 씨는 2010년 현재 구로동에 있는 해피랜드F&C에서 총무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해피랜드F&C는 원래 강남구 신사동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1995년 12월 18일 구로동에 사옥을 짓고 이사를 왔다. 15년 전, 처음 구로동으로 출근하던 날을 김흥수 씨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동네가 황량했어요. 공장들이 있던 자리는 비어 있는 곳이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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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패션 거리. 구로구의 동명인 ‘가리봉동’과, 미국 비버리힐즈의 세계적인 패션 거리인 로데오드라이브에서 ‘로데오’를 따와 가리봉 로데오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구로구 가리봉동 지역은 과거 구로공단의 핵심 지역으로서, 구로공단 지역 내에 위치한 의류 회사들이 이 지역에 자사 상설점을 내면서 가리봉 로데오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섬유 및 의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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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던 극장. 1980년대 이후 구로공단의 제조업체 대부분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구로공단오거리에는 의류 할인 상설 매장을 중심으로 한 패션 거리인 가리봉로데오거리가 형성되었다. 가리봉극장이 위치한 가리봉로데오거리 주변은 천일극장과 함께 유흥업소가 밀집되면서 매우 번화한 곳이 되었다. 1964년부터 수출 산업의 육성과 국제 수지의 향상을 위하여 조성된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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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5일 서울시에서는 ‘가리봉지구 재정비 촉진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구로구 가리봉동 125번지 일대를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가리봉동 지역에 최고 53층의 고층 빌딩과 5430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지금의 벌집과 다세대 주택으로 가득 찬 공간이 완벽하게 탈바꿈하는 것이다. 서울시와 구로구청은, 구로디지털단지와 광명시를 잇는 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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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재래시장. 가리봉시장은 1970~1980년대 구로공단 직공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서 1976년 형성되었다. 2010년 가리봉시장 일대를 재개발하는 ‘가리봉균형발전촉진지구 개발사업’에 따라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125번지 일대의 28만여 ㎡ 땅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호텔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시장 재건축 사업이 불투명해지자 가리봉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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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던 가리봉전자에서 일어난 노동 운동. 가리봉전자는 1983년 독산공장을 설립하고, 1984년 구로공장을 설립한 발광다이오드, 저항기 등의 전자 부품 생산 업체로서 자본금 26억8천2백만 원, 노동자 수 800여 명의 규모를 가진 업체였다. 노동운동에 대해 탄압으로 일관하던 5공화국 정권은 1983년 말부터 정권이 안정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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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구로공단 동맹파업에 참가했던 가리봉전자 근무 노동자가 조직한 민주 노동조합.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은 구로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민주 노동조합이다. 가리봉전자 노동조합은 무리한 생산량 강요, 특근 및 잔업 강요, 조회 시간 연장 등과 같은 부당한 노동 강요와 노동에 비해 낮은 임금, 특히 장기 근속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하여 사측에 개선을 요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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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1960년대 구로 지역은 논밭과 이주 집단으로 구성된 시골 지역이었고, 1960~1970년대를 지나면서 공장과 벌집으로 대변되는 공단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재개발 정책과 디지털 단지 정책으로 새로운 산업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로구 지역의 건축물 역시 1960~1970년대 이래 형성된 전통적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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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 및 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구로구는 1960년대 경인축을 중심으로 하는 철도·도로망의 발달과 함께 경인로 변을 중심으로 시가지와 상권이 점진적으로 형성되면서 도시로의 성장이 시작되었다. 특히 정부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따라 1965년부터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가 이곳에 형성되며 수도권 제조업의 중추 지역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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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맹파업은 1985년 6월 22일 정부가 대우어패럴 노조 간부 3인을 구속 시킨 사건을 계기로 구로 지역 노동자들이 같은 달 24일부터 6일간 벌인 투쟁이다. 구로 지역에서 5개 노조가 동맹 파업했으며 5개 노조와 그 외의 노동운동 세력 및 민주화운동 세력도 동맹 파업을 지지하는 연대 투쟁을 벌였다. 구로 지역 노동자 투쟁은 노동자들이 노동 3권 보장, 노동부장관 퇴진, 노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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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는 산맥이 가로놓여 두 지역 간의 소통이 어려울 때 두 지역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교통로 구실을 한다. 현재 서울특별시 구로구에는 16개의 고개가 있으나 도로 건설과 시가지 확장으로 산지가 개간되어 고개의 기능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구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16개의 고개가 교통로로 이용되었으나 오늘날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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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2동 고척근린공원 내에 있는 야외무대. 고척근린공원은 자연적인 야산을 공원으로 조성한 구로구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총면적 104,142.15㎡에 다목적 광장과 축구장, 테니스장, 농구장 및 각종 체력 단련 시설과 벤치, 그늘 시설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공원 내에는 고척도서관과 구로구민체육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의 휴식 공간은 물론 다양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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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한국수출 3공단 내에 있던 근로자들을 위한 복지관. 공단 근로자들의 복지 향상과 생계비 절약, 주거 문제 해결 등을 위해 건립되었다. 한국수출산업공단에 의해 1977년 4월 말 복지관이 건립되었으며 이어 12월 22일에는 생활관이 건립되었다. 교양 및 문화 사업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였다. 일요 교양 대학과 함께 저녁마다 야학을 열어 중등 과정과 고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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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인력이나 기계력으로 원료를 가공하여 유용한 물자를 만들어 내는 산업.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공업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은 공업 단지의 개발을 통한 계획 입지 정책을 강조한 것이다. 1967년에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구로공단’이라 불리는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의 조성이 시작되면서 공업 단지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구로구에는 국가산업단지로 서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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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구로구 구로3동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이뤄진 삭막한 회색 도시다. 이런 곳에서 1961년에 지어진 공영 주택 600동과 간이 주택 275동, 1962년에 지어진 공익 주택 275동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듯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공영 주택과 간이 주택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사람들의 증언이 나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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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에 분포되어 있는 관광 자원. 한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는 구로구는 한반도의 중심 지역으로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 유적지와 박물관, 공원, 기계 공구 상가 등의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구로구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던 곳으로 농촌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공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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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과 다문화 교육은 소외된 계층을 위한 비제도 교육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구로의 비제도 교육을 대표하고 있다. 구로공단 및 그 배후 지역은 196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들의 삶터였다. 이러한 특성은 이 지역이 속한 구로구의 야학과 다문화 교육이라는 독특한 비제도 교육의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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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지나고 있는 현재 구로구 지역은 첨단 디지털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1970년대 구로구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중심지였다. 굴뚝 공장은 구로구의 상징처럼 인식됐고, 수출 공업 단지의 대명사가 됐다. 일자리가 많으니 당연히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십대들이 가리봉동에 살면서 구로구의 공장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리봉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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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구(區)는 특별시,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두는 동(洞) 위의 행정 구역 단위이다. 구로구는 서울특별시 25개 구 중 1980년 4월 1일에 생긴 자치구로, 나이가 많은 아홉 노인이 장수했다고 하여 ‘구로(九老)’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구로구를 상징하는 꽃은 목련이고 새는 비둘기이며 나무는 느티나무이다. 1949년 8월 13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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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973년 설립 이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를 지켜 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구로구 구로동으로 이전했다. 구로구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는 신호탄이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연간 800억 원의 예산으로 국내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하는 기관이 구로구로 이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구로구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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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연대 파업 투쟁을 위해 결성되었던 구로 지역 노동조합들의 연합체. 6·25전쟁 이후 최초로 일어난 연대 파업 사건이 바로 구로 지역 연대 파업 투쟁이며 이 연대 파업 투쟁을 위해 결성된 연합체를 구로노동자연대투쟁연합이라고 한다. 1980년대 중반 구로 지역 대부분의 공장들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관리직과의 차별 대우 등이 극심하였다. 대우어패럴의 경우 정상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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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속하는 법정동. 구로동은 옛날 마을에 노인 아홉 명이 오랫동안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조선 영조 때까지는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 구로리였고, 1795년(정조 19) 금천현이 시흥현으로 개칭됨에 따라 시흥현 상북면 구로리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전문 6조의 칙령 98호에 따라 시흥현이 시흥군으로 바뀌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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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1974년 서울특별시 구로구 일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교도소 동기였던 이종대와 문도석이 출소한 후,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생활고가 지속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평택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군용 M-2 카빈 소총 3정을 훔쳐 범죄를 저질렀다. 이종대와 문도석은 훔친 M-2 카빈 소총 3정을 소지하고 범행을 위해 승용차를 준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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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시간 구로디지털단지역. 사람들이 줄지어 계단을 내려온다. 이 역을 찾는 사람이 하루 14만 명에 이르니 사람도 자동차처럼 모두 줄지어 다닌다. 그래서 출근 시간의 구로동은 활기차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은 보도 자료를 통해 지난 2010년 4월 27일자 기준으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입주 기업 수가 1만 17개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또 1만여 기업에 입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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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남구로역 4번 출구에서 구로3동을 둘러보면 온통 다세대 주택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 말로 빌라라고 부르는 건물들인데, 한 건물이 보통 20평[66.12㎡] 남짓한 크기다. 그리 넓지 않은 건물들이지만 대부분 4층에서 5층 정도로 높게 올렸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골목이 좁다. 빌라의 건물과 건물은 거의 맞닿아 있어 주차를 위해 배려한 곳이 거의 없다.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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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는 정부가 무허가 건축물을 정리하던 시기였다. 6·25전쟁 때 서울에 정착한 사람들이 무허가 건축물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 서울시 추산으로 13만 6650동의 무허가 건축물이 조사됐다. 서울시에서는 경기도 광주에 대단위 단지를 조성해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고, 1968년에는 서울 각 지역에 시영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속전속결로 지어진 아파트는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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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크게 1단지와 2단지, 3단지로 나뉘는데, 흔히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의 1단지를 ‘구로디지털단지’라고 하고 금천구 가산동의 2단지와 3단지를 ‘가산디지털단지’라고 부른다. 디지털 1단지는 1시간의 점심시간이면 둘러볼 거리다. 시작은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이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점심 풍경은 볼거리가 많다. 벤처 타워 건물 하나에 수천 명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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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문화축제[영문명 JUMP GURO]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주최하고 있는 지역 축제이다. 2003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후 매년 축제를 거행하고 있다. 구로 문화 축제를 개최하는 데는 1960~1970년대 수출 산업의 주축이었던 구로공단 지역이 첨단 디지털 벤처 산업 단지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지역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 또한 이 지역의 열악한 문화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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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재래시장. 1960년대 경인국도 변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면서부터 이 일대를 따라 시장이 조성되었다. 구로시장은 구로구의 재래시장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시장으로서, 1962년 구로구 구로동 1단지[구로구 구로동 736-1번지[구로동로20길 6-3]]에 4,776㎡ 규모로 개장되었다. 구로시장의 총면적은 1,297㎡이며, 2010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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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구로시장 내에 있는 도로. 구로시장 내에 위치한 도로로서 탐방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시장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구로시장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구로시장길은 구로시장1길~구로시장3길로 구성되어 있다. 구로시장1길은 약 300m, 구로시장2길은 210m, 구로시장3길은 70m로 총연장 580m에 달한다. 폭은 10m 이하로 도로 위계상 소로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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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2일, 필자는 대한노인복지회 구로구지회 임원단을 만났다.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는 구로구 산하 162곳 경로당 회원 7000여 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노인회’라지만 혜택을 받으려 하기보다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어느 주민 단체보다 강하다. “공순이, 공돌이 하면 안 되죠. 1970~198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 산업 역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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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을 가로지르는 도로. 1993년 7월 23일에 처음 구로큰길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구로구 구로동을 지나는 큰길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길이는 1.83㎞, 너비는 35m이며, 왕복 6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로큰길이 지나는 구로구는 한반도의 남서부와 서울을 연결하는 관문에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교통과 통신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해 왔다. 공구상가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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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는 음식업 종사 포장마차 집단. 포장마차는 술이나 기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노점으로 서서 또는 앉아서 신속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점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과 달리 ‘포장마차’라는 단어 자체는 ‘포장한 마차’를 뜻한다. 포장마차는 원래 18세기경부터 미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사각형 대형 마차로서, 차체의 상부가 캔버스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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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연기를 내뿜는 ‘굴뚝 공장’은 구로공단[정식 명칭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의 대표 이미지에 다름없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굴뚝 공장이 남아 있던 구로동은 2010년 현재 구로디지털단지[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완벽하게 탈바꿈해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실감케 하는 곳이 되었다. 1960년대 현 구로3동 지역은 영등포에서 시작해 수원으로 가는 국도가 근접해 있었다. 영등포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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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노동자들이 일할 때 입던 옷. 작업복이란 공장, 농촌, 어촌, 광산, 사무실, 길거리, 가정 등에서 일할 때 그 작업의 내용에 적합한 옷을 일컫는다. 1960년대 구로공단이 들어서면서 공단 근로자들이 직종과 업무에 적합한 각종 작업복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작업복은 기능성·심미성·상징성이 스타일의 기본적인 3요소가 되며, 보건성·장신성(裝身性)·적응성·내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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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중국 요리 전문점. 중국 동포들이 구로구 가리봉동에 자리를 잡은 때는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이후부터이다. 구로공단이 번성하던 1970년대 쪽방촌이던 이곳에 저렴한 숙소를 찾는 중국 동포가 몰려들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가리봉동은 중국 동포 밀집 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공업 단지가 밀집해 있는 구로구 가리봉동의 특성상 다수의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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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의 산실, 구로공단과 가리봉동」은 노동이라는 ‘주제 혹은 계급성’과 구로라는 ‘지역성’을 토대로 한 새로운 ‘문학사’이다. 이 새로운 문학사는 다음의 과정을 통해 구성되었다. 먼저 ‘문학의 위기’ 담론 이후 문학의 범주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온 경향을 고려하고, 과거의 공장-노조-파업에 갇힌 협소한 개념을 넘어서는 노동의 범주를 설정한 뒤, 마지막으로 구로라는 지역성을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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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의 노동자 계층이 생활 조건을 유지·향상시키기 위하여 벌이는 조직적인 운동. 구로 지역의 노동운동은 주로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경제 개발 정책은 노동자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경제 개발 기간에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로 말미암아 농업 인구가 공업 분야로 유입되면서 노동 인구는 증가하기 시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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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인 다음의 지도 검색창에 ‘가리봉시장’을 입력하면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주변에 몇몇 지명들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볼 수 있지만, 가리봉동 및 구로 2~4동 지역에는 주변과는 달리 지명이 표시되지 않은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곳이 한 때 그리고 지금도 속칭 ‘벌집촌’으로 불리고 있는 지역이다. 벌집이란 벌들이 모여 사는 집을 말한다. 그러나 구로공단 근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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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의 노동자 계층이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 2007년 말 기준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0.8%로 전년에 비해 0.5%포인트 증가하였고 노동조합 수는 5,099개소로 전년보다 790개소[약 13.4%] 감소하였다. 조합원 수는 168만 8000명으로 2006년보다 128,773명[8.2%] 증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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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동 개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2010년 현재 생존해 있는 가리봉동의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으로 한정지으면 대략 1930년대까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팔순이 넘는 노인들이 가리봉동에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발이 계속되면서 떠나갔다. 서울의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가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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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거주하고 있는 국제결혼 이주자의 가정. 1964년 구로구에 구로공단이 조성된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노동자 신분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또한 외국인들이 혼인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구로 지역에 거주하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다문화 가정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가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있고,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가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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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부터 1985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던 대우어패럴에서 일어난 노동 쟁의. 대우어패럴 은 수출입업 및 피복류 제조·판매업체로, 1964년 11월 원림산업으로 설립되어 1983년 12월 상호를 변경하였다. 1985년 7월 세계물산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2004년 3월 SK그룹에 편입, 다시 상호를 에스지위카스로 변경하였다. 5공화국 정부는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 든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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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구로공단이 있던 곳. 대한민국 수출의 10%를 담당했던 산업 1번지. 수많은 여공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 곳. 바로 가리봉동이다.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목한 가정에서 평범한 유년 생활을 보내고~’로 시작하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좁은 방에서 언니·동생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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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정식 명칭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은 과거 한국 노동 운동의 최전선이었다. 공장에서는 노조가 만들어졌고,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 노동자 보호를 위해 분쟁이 빈발하였다. 1970년대 노동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대학생들이 위장 취업해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10년 구로동의 모습은 또 다른 산업의 최전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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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동 철산대교에서 구로구 구로동을 지나 영등포구 대림동까지 연결되는 도로. 디지털단지로의 옛 명칭인 공단로(工團路)는 1981년 1월 21일에 서울특별시 공고 제14호에 따라 처음 제정되었다. 주요 통과 지역이 한국 수출 산업의 기수인 구로구 구로동의 공업단지였기에 공단로라고 이름 붙였다. 2000년 12월에 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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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를 ‘천지개벽’이라고 부른다. 굴뚝 공장이 즐비하던 곳에 빌딩형 공장과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180도 바뀐 구로동과 가산동, 가리봉동만큼이나 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잊혀져 버렸다. 개발 독재 시대 국가의 공식 호칭은 ‘산업 역군’이었지만 실제로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렸던 이들의 삶은 어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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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음악·미술·연극·영화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현대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경제적 활동에 버금가는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활동 영역이다. 따라서 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소프트웨어적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마당과 같은 하드웨어적 인프라가 중요한 시대이다. 구로구는 2003년 양대웅 구청장이 취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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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민방위에 편성된 사람들이 훈련할 때 입던 옷. 1960년대 구로구에 구로공단이 들어서면서 공장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다. 공장 새마을 운동은 직장의 제2가정화 운동, 종업원의 복지 향상 등을 내세워 노사 협조주의를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비판 의식을 통제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북한의 남침 위협을 과장하여 유신 체제를 강화하던 박정희 정권은 1975년 4월 남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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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며 전승되는 민간의 습속. 민속은 인간이 자기가 속한 자연적 환경, 역사적 환경, 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기 위하여 지혜와 신앙으로 엮어낸 생활풍속이다. 구로 지역은 농업을 하던 자연마을에서 구로공단으로 변모하면서 향토 문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크게 변모하였다. 따라서 민속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 구로구는 부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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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이고 향토색이 담긴 놀이. 현재 구로구는 조선시대의 경기도 금천현과 부평도호부 일부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관악산을 끼고, 서쪽은 김포평야에 이어지는 구릉 지역이다. 또한 안양천과 한강의 지류가 구로구 일대에 걸쳐 있다. 이와 같은 자연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은 다양한 생활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민속놀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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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흑룡강성에서 농사를 짓다가 1년 전인 2009년 한국으로 들어온 이주학[1959년생] 씨는 가리봉동 벌집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오려고 하지만 비자 문제가 쉽지 않다. 한국 사람의 초청을 받거나 한국 업체의 초청을 받아야 하는데 초청하는 곳은 많지 않고 오려고 하는 사람은 많다 보니 돈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일이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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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로구 구로3동과 가리봉동은 주거 환경 측면에서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5년 구로구의 주거 현황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구로3동은 아파트가 40%, 다세대 주택이 33%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리봉1동은 단독 주택이 83%, 가리봉2동 역시 단독 주택이 95%에 이른다. 따라서 가리봉동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려면 단독 주택의 모습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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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과거 미군 부대에서 나온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끓여 먹는 음식. 부대찌개는 의정부 미군 부대 근처 식당에서 처음 만든 음식으로, 군대의 찌개란 뜻이다. 6·25전쟁 직후 서울에서 일부 사람들이 의정부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에서 나온 핫도그, 깡통에 든 햄과 소시지 등 잉여 음식을 이용하여 우리식으로 고추장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 먹은 데서 비롯되었다. 부대찌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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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딱딱한 과실을 깨물어 먹는 풍속. 부럼깨기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 까서 먹는 잣·호두·밤·땅콩 등과 같이 단단한 견과(堅果)를 말한다. 이를 ‘부름’, ‘보름’이라고도 한다. 부럼의 어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과종(果種)들을 총칭하여 ‘부름’이라고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부스름의 준말로 ‘부럼’이라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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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구로동성당이 생기기 전 모습이에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죠?” 최상남[1949년생] 씨가 50여 년 전 빛바랜 사진을 보여 준다. 구로동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해 2010년 초 은퇴하기까지 40여 년을 구로동에서 지낸 최상남 씨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첫 장이 열렸다. 최상남 씨는 1968년 대학교를 진학하던 무렵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에는 국제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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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과 가리봉동에서 만난 노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장화 없이는 못 사는 동네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으면 못 산다 했어.”라는 말이었다. 가리봉2동 골말경로당에서 만난 윤묘병[1927년생] 씨는 “내 어렸을 때는 여기 장마라도 오면 난리가 났었지.”라는 말로 옛 시절의 고단함을 털어놓았다. 노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마철이면 지금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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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부흥사 근무 노동자에 의하여 조직되었던 민주 노동조합. 부흥사는 봉제업체로서는 드물게 비교적 안정된 기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노동자의 초임은 2,240원에 불과하였으며, 본공이 되어도 초임이 2,460원밖에 되지 않아 임금 수준이 매우 낮았다. 또한 창문도 없는 방 하나에 10명에서 최대 25명까지 기거하며 외출에 통제를 받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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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사회 변화를 꾀하거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전개하는 집단적 행동. 구로 지역은 공단지대로서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노동운동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운동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저임금이나 노동악법 등이 국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려 있었고, 이들의 쟁의를 억누른 것도 기업가만이 아니라 정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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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는 전국의 자치 단체 중 최초로 행정 부서에 여가지원팀을 갖게 된 자치구이다. 또한 지난 2007년 명지대학교 여가경영학과에 여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여 구로구를 일약 디지털 여가 도시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시킨 바 있으며, 현재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 및 운영, 생활 속 문화·예술 향유 기획 확대, 생활 체육 활성화 등을 중심으로 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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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는 대규모 산업 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개발·조성된 지역. 산업단지는 공업용으로 개발되어 산업시설이 들어서는 일정한 지역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1961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됨에 따라 1962년 울산공업단지를 시초로 전국에 수많은 공업 단지가 건설되었다. 공단은 성격별로 수출자유공단·수출산업공단·기계공단·종합화학공단·지방공단·민간공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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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인천까지 연결되는 구간에는 많은 역이 설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구로역은 서울과 인천의 정중앙은 아니지만, 대략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던 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서울에서 수원 간의 경수선과 경인선이 분리되면서 구로역은 경인선의 시발점이 되었다. 1970~1980년대에는 구로공단이 번성하고 주변에 산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구로역은 사람은 물론 화물의 유동량이 매우 많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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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던 노동 운동 단체. 서울노동운동연합은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 이후, 지역 노동자의 조직적이고 통일된 정치 투쟁을 수행할 수 있는 대중적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조직되었다. 1985년 8월 25일 노동자연대투쟁연합, 청계피복노동조합,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친위원회 등 4개 조직을 연합하여 서울노동운동연합으로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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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는 중국 동포 밀집 거주 지역이다. 2008년 10월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구로구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는 총 25,957명이다. 그 중 가리봉동에 7,712명이 살고 있고, 구로동을 비롯한 6개 동에 16,94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2009년 7월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외국인 주민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로구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는 32,45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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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인쇄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 서점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활자 인쇄술의 발달로 도서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교통 통신의 발달로 유통이 편리해지면서 구로구를 비롯한 전국에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구로구에 언제 처음 서점이 생겨났는지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동네를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지역 서점이 구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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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성공회(聖公會, The Anglican Domain)는 1534년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해나간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교회를 총칭하는 말이다.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 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공회는 영국 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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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시장은 오일장이나 상설시장, 백화점처럼 구체적으로 상품을 사고파는 곳이다. 또한 시장은 가격이 형성되는 추상적인 시장도 있다. 증권시장, 노동시장, 금융시장 등이 여기에 속하며 주로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장은 구체적인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으로서 주로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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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구로구 구로3동을 가로질러 금천구 시흥동까지 연결되는 간선도로. 금천구 시흥동을 통과하여 시흥대로라고 이름 붙였다. 건설 당시부터 폭이 50m였기 때문에 금천구 지역 주민들은 예전부터 시흥대로를 ‘50m 도로’라고 불렀으며, 시흥대로에서 갈라지는 박미삼거리에서 구로전화국사거리까지의 4차선 도로인 독산동길을 ‘20m 도로’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시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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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구로 지역에는 몇 곳의 자연 촌락이 있던 지역에 1970년대 초반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특별한 음식이나 음식점이 형성되지 못하였다. 다만 공단이 들어선 후 가리봉동에 먹자골목이 생성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중국동포들이 그 공간을 점유하여 중국동포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구로구에는 특별히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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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아귀에 미더덕, 콩나물, 미나리 등을 넣어 찜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 아귀찜은 경상남도 마산 일대에서 처음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구로 지역은 한때 공단이 밀집하여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도시 근로자들이 거주하던 곳이어서 아귀찜과 같은 지방색 있는 음식점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특히 아귀찜은 술안주로 인기가 높아 구로공단 직원들의 회식 단골 메뉴였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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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조성되어 있는 5층 이상의 공동 주택. 아파트란 영어로 ‘apartment’로 5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부터 아파트 단지 건설이 시작되어 1980년대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최근에는 경관 문제와 더불어 아파트의 형태가 다변화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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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매체를 통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출간하는 일. 언론출판은 개인 또는 집단의 의견이나 사상을 매체를 통해 외부에 알려서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다. 과거에는 인쇄매체인 신문과 잡지, 그리고 영상매체인 방송이 주로 이용되었으나 2000년 이후 인터넷방송, 인터넷 블로그 등 온라인매체의 활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언론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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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한반도 중앙부에 있는 서울특별시 구로구는 1980년에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上北面)·동면(東面), 경기도 부평군 수탄면(水呑面),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이루어졌다.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구로구는 기름진 평야 지대가 있을 뿐 아니라 육로·수로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입지 조건을 갖추어서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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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의 노동 운동을 전개하였던 노동 선교 센터. 영등포산업선교회는 노동 현장에 복음을 전파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한 선교를 수행할 목적으로 1958년 설립되었다. 이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의 복음을 산업 사회에 선포함으로써 노동자와 기업인 모두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일하며 경제 활동을 하도록 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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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영화는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이다. 즉, 연극이 무대에서의 직접 상연을 전제로 한다면 영화는 카메라에 의한 편집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복제물 상영이다. 현재 구로 지역에는 구로디지털단지 내에 우리나라 최대 애니메이션 회사인 동우 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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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지역 사람들이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구로 지역의 의생활은 현재 가리봉 1동에 있는 대촌마을을 사례로 하여 살폈으며, 시기적으로는 1960년대 후반 구로공단이 들어서기 이전의 농경 생활을 하던 자연 마을일 때를 기준으로 하여 서술하였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 마을 주민인 제보자 조신일이 1940년생이므로 1950년대 전후 시기의 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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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 이원만(李源万)[1904~1994]은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언적(李彦迪)의 15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석정(李錫政), 어머니는 이사봉(李泗峰)이다. 17세까지 향리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4년제 사립학교에서 신학문을 수학하고 흥해공립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30년 영일군 산림기수보로 취직하였고,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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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거주하는 사람 수. 구로구의 인구는 1960년대에 구로공단[한국수출공업단지]이 조성되면서 농촌 지역으로부터 이주해 온 노동자들로 인하여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한동안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구로공단에 입지했던 제조업체들이 서울 주변 지역으로 계속 분산 배치됨에 따라 노동자 수가 감소하게 되었고 이는 곧 구로구의 일시적인 인구 감소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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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국민 생활 계몽 운동에 따라 제정되어 입던 남성복. 박정희 정권은 5·16군사정변 이후 1961년 재건운동국민본부에 의해 재건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종래의 거추장스럽고 비활동적인 생활을 개선한다면서 신생활복, 일명 재건복 입기 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1965년 7월 8일 국회에서는「신생활복 착용안」을 통과시켰고, 이어진 제3공화국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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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절기에 맞는 세시풍속. 1. 봄 1) 1월 1월에는 신년 행사가 주를 이룬다. 설에는 떡국을 해서 차례를 지냈다. 집안사람끼리는 세배를 하였으며 성묘를 갔다. 설날 새소리를 들으면 풍년이 들고, 까치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청참이 있었다. 정초에는 윷점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원일소발이라고 하여 머리카락을 태우는 풍속도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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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구로구는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의거 영등포구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구로 신설되었다. 그 중심지는 구로동의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로 ‘구로공단’이라는 명칭으로 더욱 많이 알려졌고, 우리나라 산업화의 모델을 제공한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 우리나라의 근·현대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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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각종 원료를 가공하여 물품을 만드는 산업. 제조업이란 물질 또는 구성 요소에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 즉 농업, 수산업, 임업 등 제1차 산업에서 생산된 원료를 가공하여 제2차적 생산을 수행하는 산업으로서 광업, 건설업 등과 함께 제2차 산업으로 분류된다. 산업 물자의 수송을 위한 철도·도로망의 정비·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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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오히려 비행 청소년이 적었어요. 글 모르는 사람도 야학에 오지만 검정고시를 봐서 더 나은 직장에 가려는 학생도 많았죠. 연령대도 천차만별이었어요.” 1987년부터 2년 동안 천주교구로3동성당에서 운영했던 ‘보스꼬근로청소년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했던 최상남[1949년생] 씨의 설명이다. ‘구로공단’이란 단어가 옛말이 된 지금 ‘야학’이란 단어 역시 낯설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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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공단 내의 가옥을 기반으로 영위해 온 주거 형태와 공간 배치 및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도시화가 되기 전의 구로 지역은 논밭과 임야, 자연 마을이 펼쳐진 곳이었다. 당시의 주거 생활에 대해서는 현재 도시화되지 않은 경기도 인근의 촌락들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당시 공단 내의 주거 문제나 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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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던 중국 동포를 위한 모임. 중국동포회는 중국 동포를 위해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는 중국동포교회에서 만든 모임이었다. 중국동포회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및 중국 동포들을 위한 각종 상담과 지원을 통하여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구로구의 신구로역 및 가리봉시장 일대는 중국 동포들이 집중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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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진 마을이라서 붙여졌다는 설과 구로구의 땅 모양이 바짓가랑이처럼 갈라진 것과 연관돼 고을 곡(谷) 자와 같은 의미인 ‘갈’ 또는 ‘가리’에서 유래했다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이 일대 277,685.95㎡(약 8만4천 평)에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펼쳐진다. 기존의 도시 문법을 뛰어넘고자 하는 구로구의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은 ‘카이브(KAIV)[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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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원[1980년생] 씨는 광주광역시가 고향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올라온 서울에서 최서원 씨는 서울 구로동에 있는 게임 잡지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때가 2004년이니 벌써 6년이 지난 일이다. 당시는 구로디지털단지가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많은 건물들이 공사 중이었고, 아파트 단지도 터를 파고 있거나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를 무렵이었다. 최서원 씨가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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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주민들이 평상시에 입던 의복. 평상복은 상의(常衣)·통상복·평복(平服)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 평상복은 민족적·지리적으로 동북에 숙신족, 서북쪽에 선비족과 돌궐족, 서쪽에 한족 등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북방 기마 민족의 옷에 영향을 받아 추위와 유목 생활에 알맞은 소매와 바지폭이 좁고, 저고리와 바지 분리형 양식이 자리 잡았다. 때로는 외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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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15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에 의거해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지역이 공업 단지 예정지로 지정되었다. 이후 1967년 국내 최초의 공업 단지로 조성된 구로공단은 개발 경제 시대 우리나라 산업화의 요람이었다. 실제로 1,980,000㎡의 드넓은 부지에 수출입국이란 시대적 사명을 띠고 출발한 구로공단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가발, 봉제, 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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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이루어지는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지방 행정은 지방 행정 기관이 중앙 행정부의 일선 행정 기관으로서 그 지역에 대한 중앙 정부의 일반 행정 사무를 포괄적으로 위임받아 국가 행정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행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치 행정은 그 지역 주민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중앙 행정 사무 이외의 지역 일반 행정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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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국가의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단위. 현재 구로구의 행정 구역은 구로1동·구로2동·구로3동·구로4동·구로5동, 가리봉동, 신도림동, 고척1동·고척2동, 개봉1동·개봉2동·개봉3동, 오류1동·오류2동, 수궁동 등 총 15개 행정동과 신도림동, 구로동, 가리봉동, 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온수동, 항동, 궁동, 천왕동 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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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주민들이 예부터 즐겨 먹으며 고유의 비법으로 만드는 요리. 한반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중앙에는 척추와 같은 산맥들이 남북으로 뻗으며, 동·서·남의 삼면이 바다를 면하고, 큰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크고 작은 강이 바다로 흘러간다. 이 때문에 각 지역마다 자연환경이 다르고 남북 사이의 기후도 다르므로 지역마다 서식하는 생물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특히 교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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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지리·역사·사회·전승 등에 관한 기록. 구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향토지로는 『시흥군읍지(始興郡邑誌)』, 『부평군읍지(富平郡邑誌)』, 『부평향교지』, 『구로구지』, 『향토사수탄』 들 수 있다. 구로 지역의 향토지와 관련해서는 현대 이전에 발간된 읍지와 지리지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부평군읍지』와 『시흥군읍지』 및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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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의 역사. 서울특별시의 남서부에 있는 구로구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의 구로리·도림리·가산리·시흥리에 속했던 지역으로 1949년 구로리와 도림리가, 1963년 가산리와 시흥리가 영등포구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로 구로동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 계획이 수립되자 영등포구의 구로동, 가리봉동, 독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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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대한민국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퇴직을 했고 이어지는 기업들의 부도로 인해 거리로 몰려난 사람들도 늘어났다. ‘노숙자’, ‘명퇴자’, ‘실업자’가 시대의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가리봉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리봉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이 동네 재산가들이 1998년, 이른바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