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B0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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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다일 |
1970년대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들어선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두어 평 남짓한 좁은 벌집에서 서너 명이 같이 생활했다. 어떤 이들은 ‘쪽방’이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벌집'이라 부르기도 한 곳으로, 두어 평 남짓한 작은 방에 부엌이 딸린 집을 말한다. 2010년 현재도 벌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김정득[1947년생] 씨에 따르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고치고 살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방의 크기와 화장실의 위치를 비롯한 기본적인 시설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필자는 가리봉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자 벌집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하였다.
[건물 하나에 벌집 20개]
가리봉1동 108번지 . 벌집은 겉에서 보기에는 조금 널찍한 2층 양옥집이다.
건평이 140평[462.81㎡]에 마당에는 차도 한 대 들어갈 수 있으니 넉넉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 20여 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한 집에 두세 명씩 사는 경우도 있으니 어림잡아 30여 명은 살고 있는 것 같다.
아침부터 여럿이 같이 사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바로 화장실 때문이었다. 벌집에 사는 남자들은 대부분 새벽 5시 전에 집을 나서므로 이 시간이 러시아워다. 여자들은 러시아워가 조금 늦다. 대다수가 중국 동포들인데, 이들의 일자리는 대부분 식당으로, 가깝게는 구로구에서 멀게는 서울 각지의 식당으로 출근한다. 주로 출근 시간을 갓 넘긴 9시쯤이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그러나 여자든 남자든 러시아워의 화장실 사용은 쉽지 않았다.
보통 서울의 주택가에서는 건평 140평 주택의 경우 부분적으로 세를 주는 경우는 많다. 주인집을 포함해 서너 세대가 살면서 각자 출입문과 화장실을 갖고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가리봉동의 벌집은 달랐다. 2층 양옥을 바깥에서 바라보면 창문의 수만큼 문이 달려 있었다. 빙 둘러봐도 벽마다 서너 개의 문이 달렸다. 각각 독립생활을 하는 벌집이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 한 사람이 겨우 들어설 만한 공간에 주방이 차려져 있다. 작은 가스레인지와 설거지통, 그릇을 조금 넣어 놓는 벽장이 전부다. 원래는 연탄아궁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스보일러로 모두 바꿨다. 연탄을 때던 집답게 부엌보다 방이 계단 두 개 정도 높다. 그 아래로 연탄불이 돌아 방을 덥혀 주었다. 방에는 신문을 양쪽으로 펼친 크기의 창이 달려 있다. 그나마 창이 있는 집은 월세가 몇 만 원 더 비싸다. 작은 냉장고와 텔레비전, 옷이 들어 있는 장이 살림의 전부다. 특이한 것은 부엌 위쪽의 공간을 막아 창고처럼 쓸 수 있는 벽장이 있었는데, 옛날 한옥에서 부엌의 위쪽을 창고로 쓰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벌집에도 명당이 있다]
낮 시간 벌집은 조용하다. 사람들이 없으니 당연하다. 다시 벌집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은 9시가 넘은 늦은 밤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벌집에서 한숨 푹 자고 다음날 새벽부터 일이 또 시작된다. 여기서 벌집의 명당이 나뉜다.
사실 ‘명당’의 조건은 별다른 것이 없다. 햇볕이 잘 들어올 수 있는 창이 있고,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가깝고 편리하면 명당이다. 또한 중요한 명당의 조건이 있는데 바로 ‘조용한 이웃’이다. 방과 방이 벽 하나로 나누어져 있으니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 옆방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낮에도 들릴 정도다. 그러니 옆방에 밤새 술 마시고 떠드는 이웃이 있으면 편안한 휴식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벌집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이른바 명당 벌집이 있는 곳을 훤히 꿰뚫고 있다. 어머니가 하시던 벌집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김정득 씨는 “잘 쉬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사람들 사이에 조율하는 일도 집주인의 몫”이라며 명당 벌집을 위해서는 관리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명당이라 알려지면 20여 칸의 방이 비어 있을 날이 없다. 살던 사람이 나가기가 무섭게 주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가리봉동 벌집촌에도 나름대로 좋은 곳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있다.
반면, 가격은 좀 더 저렴하지만 살기 어려운 벌집도 있다. 일단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은 인기가 없다. 또는 지하는 아니지만 창문이 없는 방은 인기가 없다. 그리고 주인집이 같이 살지 않는 집도 인기가 없다. 관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소개보다 입소문과 전단지를 통해 거래되는 벌집이라 명당을 찾는 일은 경험이 좌우한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 들어오는 친지나 동료가 있다면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이 방을 구하러 다닌다. 가리봉동 골목에는 벌집을 안내하는 전단지를 쉽게 볼 수 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