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A03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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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3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다일 |
2010년 현재 이인엽[1955년생] 씨는 구로3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25명의 주민자치위원은 매달 모여서 구로3동의 현안을 처리한다. 마침 이인엽 씨를 찾아간 날이 주민자치위원회 회의가 있는 날이었는데, 구로3동 동장도 새로 바뀌어서 상견례 겸해 마련한 자리라고 했다.
주민자치위원회 회의는 하루가 저물어 가는 저녁 6시에 개최됐는데, 모두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저녁 시간에 모여 여유 있게 심도 있는 회의를 한다고 했다.
[구로동의 정책, 주민들이 직접 논의해]
주민자치위원회 회의에는 조금 늦는 사람은 있어도 빠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25명의 위원에 구로동 관계자까지 모이니 구로구 건강가정지원센터 2층에 마련된 주민자치센터실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여름이어서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주민자치위원들은 활기차게 토론을 했다. 이날의 주요 안건에는 자매결연 지자체와의 협력 내용도 포함됐다. 도시 마을인 구로동과 제휴를 맺은 농촌 마을에 대한 얘기였다. 농촌 마을에서 올라오는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해서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실속 있는 제휴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의외로 회의의 열기는 뜨거웠다. 구로동의 최고 어른인 노인회에서부터 상인들의 모임까지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실제로 주민 자치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여름의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건물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 놓고 진행됐지만 구로동의 주민들은 예전부터 이런 회의를 자주 진행했다고 한다. 바로 십 수 년마다 이어진 개발 때문이었다.
[개발의 이면에서 활약한 주민들]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구로동의 재개발은 농촌 도시를 집단 거주촌으로 바꿔 놓았다. 구로동은 1960년대 초반까지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게다가 500년을 대대로 이어오면서 살아왔을 정도로 안정된 마을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큰 변화가 없던 마을에 개발의 붐이 닥친 것이다. 최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서울 각지에서 살던 집이 철거되어 구로동으로 흘러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개발에 대해선 뚜렷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이인엽 씨 역시 1969년에 부모님을 따라 구로동에 들어왔다. 그 후 이발소를 하면서 구로동에 자리를 잡았고, 2000년대 초반에는 생업을 접고 지역 개발을 위해 뛰어들었다.
결국 구로동의 마지막 공영 주택으로 불리던 지역은 두산위브아파트로 재개발됐는데, 이인엽 씨는 재개발을 추진하기 전부터 모아 온 구로동 관련 사진과 신문기사 등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구로두산아파트 재개발백서』라는 이름으로 펴내기도 했다.
『구로두산아파트 재개발백서』는 제목 그대로 두산위브아파트를 재개발하기까지의 구로동 역사를 꿰고 있다.
구로동의 개발은 대부분 앞에 나선 사람 한두 명이 큰 희생 위에서 많은 사람이 이익을 나눠 가졌다. 1960년대 지어진 공영 주택과 간이 주택들이 공동 화장실에 공동 수도를 사용하며 불편을 겪고 있을 때도 그랬다. “중요한 일을 해 내셨네요.”라는 필자의 말에 이인엽 씨는 “내가 뭐 한 일 있나요. 예전에도 구로동에는 동네일에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이 많았지요.”라며 구로동 주민 얘기를 늘어놨다.
“여기 구로동에서 우당약국을 하던 박상덕 씨라고 있었는데, 그분이 일을 많이 했어요. 약국하면서 여기저기 관심이 많았었지요. 여기 학고방[공영 주택] 동네에 수도 가설을 추진한 것도 박상덕 씨였어요. 동네일에 솔선수범 하다가 나중에는 대통령 선거인단에도 당선되고, 지역을 대표하는 대의원 활동도 많이 했지요.”라고 말했다.
”다른 동네와 다르게 부지런한 주민들이 많으셨나 봐요?“라고 묻자 이인엽 씨는 “부지런하다기보다도 여기가 기본적인 생활이 불편했으니까 주민들이 많이 나섰지요. 상하수도, 화장실 같은 게 불편하니 생활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도와 갔고,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같이 도우면서 일을 했어요. 그래서 이런 역사도 책으로 만들 수 있었구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때의 주민 중 많은 사람이 구로동을 떠났다고 한다. 개발이 시작되면서 집값을 올려 받게 되자 좀 더 좋은 환경에 빨리 정착하고자 떠난 것이다. 그렇듯 재개발된 아파트에는 20%에도 못 미치는 원주민들이 정착했고,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제는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르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이인엽 씨는 “못 살아도 정감 있던 예전의 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다.”고 말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