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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877
한자 曉星物産勞動組合
영어음역 Hyoseongmulsan Nodongjohap
영어의미역 Hyoseongmulsan Labor Un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조합
설립연도/일시 1984년연표보기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었던 노동 운동 관련 사회단체.

[개설]

효성물산 노동조합은 1984년 구로 지역에서 4번째로 설립된 민주 노동조합이다. 효성물산은 효성그룹의 모기업이자 수출창구로서 1998년 효성(주)에 합병되었다.

[설립목적]

노동자에 대한 폭력 및 폭언과 저임금, 과도한 노동량 및 노동 시간, 열악한 작업 환경 등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80년대 초반 효성물산의 근로자 초임은 일당 2,200원이었고 1년 6개월을 근무하여 미싱사가 되어도 초임은 2,550원에 불과했으며 보너스는 생산직이 170%, 사무직이 400%로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의 차별이 심하였다. 또한 작업장 내에서 빈번하게 폭력과 폭언이 행해져 노동자들에게는 최악의 작업 환경이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 대항하여 일찌감치 노동조합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1982년까지 무려 7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나, 그때마다 회사 측은 주동자에 대한 대량 해고로 대응하여 노조 결성 시도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취업한 김영미와 같은 활동가에 김미성, 나윤희가 합류하게 되면서 마침내 노조 결성이 가시화될 수 있었다.

1984년 이들은 김영미의 주도 아래 한마음야학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권리 의식에 대한 학습과 토론을 진행하면서 같이 공부하던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 결성을 준비하였고, 같은 해 7월 14일 노조 결성 시도 8번째 만에 섬유노련 간부의 도움으로 섬유노련 회의실에 모여 59명으로 노조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회사 측은 회유와 협박, 노조 설립 신고서 강탈 등과 같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조합원이 대량 탈퇴하게 만드는 등 2개월 이상 노조 해산을 위한 탄압을 계속했다고 한다.

[활동사항]

효성물산 노동조합은 회사의 강압적인 탄압 속에서도 노조 유지를 위해 선전 및 대중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며 ‘근로자의 밤’, ‘유행가 대회’ 등과 같은 문화 행사가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또한 ‘생산성과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의 생산성 교육도 실시했는데, 이 교육에는 전체 조합원의 99%가 참여하였고 생산량도 이전에 비해 30%나 증가시키는 등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밝은 직장과 노동조합’ 등의 제목으로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하여 전체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대중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노동조합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열성적인 활동을 진행하였다. 특히 조합 간부나 대의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현장 생산 라인에서 적극적인 친목 활동 또는 라인 조직 활동을 전개하여 조합원들 간의 소속감과 결속력을 높이고자 하였다.

[의의와 평가]

효성물산 노동조합은 집행부의 적극적인 라인조직 활동과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문화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그들의 단결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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