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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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宇-勞動組合 |
영어음역 | Daeueopaereol Nodongjohap |
영어의미역 | Daewoo Apparel Labor Un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현주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었던 노동 운동 관련 사회단체.
[개설]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은 1984년 구로 지역에서 가리봉전자 다음인 두 번째로 설립된 민주 노조이다.
[설립목적]
낮은 임금과 임금 착취에 대한 부당함 그리고 열악한 기숙 시설 등의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대우어패럴은 생산직 노동자 남녀 평균 시간당 임금이 2,850원 정도로 매우 낮았으며 하루 10시간의 기본 노동에 2~8시간의 연장 근로를 실시하는 매우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가진 작업장이었다. 또한 18세 미만의 어린 노동자들에게는 7시간 근로의 기준을 무시하고 8시간씩 일을 하게 한 뒤, 7시간 분의 임금만을 지급하는 등 임금 착취도 심하였다.
또한 월급에서 식사 메뉴에 이르기까지 생산직과 사무직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해 부당한 대우에 대한 노동자의 불만이 높았으며 방 하나에 7~10명이 같이 거주하는 등 위생 상태가 불량한데다 외출과 외박까지 허가받아야 했던 기숙사 규칙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았다.
이에 보일러 기사로 취업해 있던 최한배와 동화교회 야학에서 최한배와 같이 공부를 했던 김준용을 중심으로 하여 심상정, 민경옥 등의 학생 출신 운동가와 추재숙을 비롯한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노동조합 창립을 위한 1년여의 활동을 진행한 결과 1984년 6월 9일 김준용, 서태원, 유화청 등을 포함한 100여 명이 넘는 조합원을 갖춘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는 그동안 친목회를 통해 유대 관계를 넓혀오고 소모임 활동으로 노동자 의식을 갖기 시작한 105명의 노동자가 6월 9일 오후 7시 섬유연맹회관에서 마침내 노동조합의 탄생을 알리는 큰 사건이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조합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단체 교섭,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수련회의 개최, 노동자 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 진행 등과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였다.
[활동사항]
공식적으로 노조위원장과 사무장 등의 현장 순회와 대의원 선거 진행, 교육, 현장의 문제점 조사 및 해결 방안 제시를 위한 조사 통계 등과 관련된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1984년 7월 18일 사측과의 단체 협약에서 조합원의 징계는 노조와의 합의 하에 이루어 질 것, 일요일·국가 공휴일 및 국가 지정 임시 공휴일·4대절·연말연시와 명절·노동조합 창립일 등의 유급 휴일 보장, 상여금 연 400% 지급, 부양 가족 1인당 6,500원의 가족 수당 지급, 연 2회 작업복 무상 지급, 경조금 지급 등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측이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며 강하게 억압하기 시작하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구제 신청서를 제출하고, 노동부 관악지방사무소에 회사를 고발함과 동시에 한국노총과 정부종합민원실, 민한당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끊임없는 투쟁을 지속하였다. 1985년 6월에는 노조간부 3명이 연행되자 항의 농성을 시작하였고, 인근 가리봉전자, 효성물산, 선일섬유 등도 이에 동조하면서 역사적인 구로동맹파업이 시작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적극적이고 강력한 투쟁을 진행하였으며, 노동자의 노조에 대한 관심과 단결성을 높이기 위해 대의원 선거를 개최하는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지속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우어패럴은 1985년 7월 (주)세계물산으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이후 SK그룹에 편입해 (주)에스지 위카스로 상호를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