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780 |
---|---|
한자 | 地球人 |
영어음역 | Jiguin |
영어의미역 | Earthia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인영 |
[정의]
1980년 소설가 최인호가 2인조 강도 살인 사건을 모델로 하여 지은 장편 소설.
[개설]
작가 최인호는 1974년 구로동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종대·문도석의 카빈 2인조 강도 살인 사건에 관한 기사를 접한 후 소설을 구상하였다. 그로부터 삼사년 뒤 이종대의 배다른 동생인 이종세를 만나 친분을 쌓으면서 본격적으로 『지구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연재 도중 정보기관의 압력으로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들의 아픔을 그린 내용이 대폭 삭제될 수밖에 없었고, 연재가 중단된 1980년 삼엄한 시대 상황 속에서 뒷부분을 생략한 채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연재가 마무리된 1984년에는 중앙일보사에서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삭제된 부분을 복원할 수는 없었고, 1988년 동화출판공사에서 개정판을 내면서 일부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러다 최근인 2005년에 월남전을 다녀온 윤중사와 윤중사의 여동생 윤혜옥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종세 이야기가 복원된 개정판[문학동네]이 나오면서 그간 삭제된 부분이 보완되었다.
[구성]
『지구인』은 형제인 이종대와 이종세가 처한 현재 상황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지난 과거의 행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재 상황으로 되돌아오는 액자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경찰과 대치중인 종대와 경찰의 강요에 못 이겨 종대에게 자수를 권하러 간 동생 종세의 불편한 심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과 함께 자멸을 택한 ‘형’과 그런 형에게 자수를 권하는 ‘동생’이 의미하듯 『지구인』은 종대와 종세의 엇갈린 운명을 그들의 과거 행적을 따라 대비시켜 보여 준다.
종대와 종세는 이복형제 간이지만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생김새뿐 아니라 고향 정읍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나, 세상에 대한 끝없는 증오심이나, 생존하기 위해 도둑질과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억척스러움 모두 그들은 닮아 있다.
그들은 꿈을 갖고 고향인 정읍을 탈출하지만 종대는 사랑하는 양공주 영숙의 기둥서방인 미군 장교 마이클을 해치고 군에서 탈영하면서, 종세는 서커스단 단원인 박씨의 자살을 도운 혐의로 그곳을 도주하면서 희망은 깨어지고 만다. 이후 종대는 금광에서 금을 캐기도 하고 극장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이 땅에 뿌리 내리려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절도 행각을 벌이다 마침내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종세 역시 신문 배달을 하기도 하고 소매치기단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끝내 소년원에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동일한 순을 밟아가던 형제의 운명은 이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종대는 출소 후 문도석과 함께 카빈총을 휘두르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처음에는 생활고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였지만 차츰 그들은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광기로 치닫게 된다. 이에 반해 종세는 소년원에서 세상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반목사를 만남으로써 버리게 된다. 그리고 출소 후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에 다녀 온 후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산다.
마침내 종대는 증오로 가득한 생명을 끝까지 소진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종세는 그런 형과 형의 가족들의 시체를 거두며 형의 증오심이 죽음과 함께 사라져 그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처럼 『지구인』은 형제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가진 것 없는 한 명의 인간이 지구에 뿌리 내리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내용]
1974년에 벌어졌던 구로동 카빈 강도 사건과 최인호의 『지구인』이 만나는 지점은 『지구인』의 종대가 도석과 함께 강도 행각을 벌이다 새로운 범행 지역으로 구로공단을 물색하면서 부터이다. 종대는 매달 25일이면 구로공단의 거의 모든 공장들이 공원들과 회사 직원들에게 월급을 현금으로 지불한다는 데 관심을 가지고, 제1수출공업단지 안에 있는 한국 호꾸리꾸 주식회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종대는 호꾸리꾸 주식회사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중소기업은행에서 직원들의 월급을 찾아 돌아오는 경리 사원의 다리를 총으로 쏜 후 돈 보따리를 탈취해 달아났다. 백주 대낮에 벌어진 이 사건은 구로공단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범죄의 광기를 멈출 수 없었던 종대는 또 다시 범죄를 벌이다 마침내 최후를 맞게 된다.
『지구인』에서 종대의 범죄는 단순한 범법 행위나 물욕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종대라는 한 인물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최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범죄는 그의 허기를 달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는 돈 때문에 약방 주인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고, 돈 때문에 가게 주인의 머리를 각목으로 후려치지 않았다. 그에겐 살아 있음을 자신에게 확인시켜 줄 자극이 필요할 뿐이다.
고향 정읍에서도 이방인으로 밖에 살 수 없었던 종대는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세상은 뿌리 내릴 수 없는 이방이었으며, 그가 뿌리 내리려 하면 할수록 그를 밀어내는 잔혹한 땅이었다. ‘지구’는 정읍에 있는 그의 부모가 그랬듯이 그가 실존해 있는지 조차 관심이 없었다. 결국 그의 범죄란 지구에 이종대란 인물이 살아있다는 실존에 대한 마지막 확인 수단인 셈이다.
비록 카빈 강도 사건은 생활고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생활고는 세상에 대한 그의 증오를 또 다시 불러일으킨 도화선에 불과했다. 그는 지구인이 되려 했지만 지구인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던 세상에 대한 증오가 폭발한 것이다. 종대가 카빈총의 힘으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한 달 치 월급을 강탈했다면 도시와 도시의 권력은 종대의 삶을 강탈했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지구인』은 도시 빈민의 고달픈 삶을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구성함으로써 치열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징]
『지구인』은 작가 최인호가 구로 카빈 강도 사건의 범인인 이종대의 동생 이종세를 만나 그와 종대의 삶을 직접 취재한 후 이를 재구성하여 창작한 소설이라는 데에 특징이 있다.
[의의와 평가]
최인호의 1970년대 작품을 세 유형으로 분류해 보면 첫째, 1970년대 사회상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 둘째,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다루고 있는 작품, 셋째, 왜곡된 현실 속에서 어른보다 더 노회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집필된 『지구인』은 1970년대 소설과의 연속선상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1970년대에 창작된 「술꾼」이나 「모범동화」, 「예행연습」, 「처세술개론」 등에는 어른을 능가하는 영악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지구인』에도 그러한 인물로 종대와 종세가 등장한다. 그러나 종대와 종세는 아이의 세계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 어른의 세계로 편입해 그 곳에서 뿌리 내리려 안간힘을 쓴다. 즉 어른을 능가하는 영악한 아이들이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 빈민의 삶을 살면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소외와 고독을 느끼며 절망하는 현대인이 되어 간다.
이처럼 『지구인』은 1970년대 최인호 소설의 여러 모습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더 나아가 악(惡)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인간 본성과 환경과의 관계를 아울러 천착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