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700 |
---|---|
한자 | 食生活 |
영어음역 | Siksaenghwal |
영어의미역 | Dietary Custom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면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구로 지역에는 몇 곳의 자연 촌락이 있던 지역에 1970년대 초반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특별한 음식이나 음식점이 형성되지 못하였다. 다만 공단이 들어선 후 가리봉동에 먹자골목이 생성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중국동포들이 그 공간을 점유하여 중국동포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
[가리봉동 먹자골목의 발자취]
현재 구로구에는 특별히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곳이 없다. 과거 이곳은 농촌 마을이었다가 공장 지대로 변모했으며, 최근 아파트나 기타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는 형편이어서 특별한 먹자골목이나 향토음식점, 향토음식 등이 발달할 여지가 없었다. 수년 전부터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 주변으로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소규모 먹자골목이 형성되기는 했으나 현재로서는 괄목할 만한 곳은 아니다. 다만 가리봉 먹자골목은 구로공단이 있을 때부터 형성되었던 곳으로, 오늘날은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동포들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어 그 귀추를 주목할 만하다.
2009년 7월 현재 남구로역에서부터 구로전화국이 있는 곳까지 1㎞ 정도의 거리 안에는 중국어로 된 간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가리봉동 재래시장이 있는 골목 주변은 가리봉 먹자골목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는 최근 10여 년 사이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중국동포들이 수천 명을 넘어서면서 중국동포 거리가 형성되었다.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 10명 중 8명은 중국동포이며, 이 때문에 골목 여기저기에서 중국어가 들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주변으로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교회, 중국 각지로 보내는 화물 운송 업체,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결혼상담소와 인력 소개소는 물론이고, 연길 개고기전문점과 북경노래방, 중국의 전통 순대나 빵 등을 파는 노점, 중국 식품을 파는 식료품 가게, 중국동포를 위한 재래시장 등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서울 안에 차이나타운을 보는 듯하다. 상인들도 대부분 중국동포들인데, 언제 이곳에 왔느냐는 질문에 “2년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았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곳에 중국동포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농경 지역이었던 구로구가 도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1971년 구로수출공업단지가 들어서고부터이다. 많은 공장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공영 주택, 간이 주택, 공익 주택 등이 들어섰다. 이렇게 하여 거주민의 상당수가 각지에서 몰려온 공장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또한 이곳에는 ‘쪽방’이라고 하여 저렴한 사글세방이 형성되어 가난한 노동자들의 수요를 충당하였다.
1990년대 중반 한·중 수교 이후 구로공단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을 주축으로 하는 공장들은 지방이나 중국으로 이전하거나 소멸되고, 디지털 단지와 같은 새로운 고부가 가치 산업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자연히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쪽방은 새로운 수요자들이 찾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중국동포들이었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동포들이 한국으로 대거 몰려오면서 값싼 주거지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수년 전 20만 원의 보증금에 월 5만 원[2008년에는 100만 원의 보증금에 월 20만 원] 정도 하는 구로 지역의 쪽방들은 중국동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중국동포들은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왔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비싼 집을 원하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중국에 송금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국동포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지만, 어느덧 이곳은 중국동포들의 거리가 되었다.
남구로역에는 새벽에 인력 시장이 형성된다. 한국 사람들도 일부 보이지만 주변에 사는 중국동포들도 상당수 인력 시장에 나간다. 이 일대에 사는 중국동포들은 조선족이 많으며, 한국말을 모르거나 서툰 한족도 일부분 있다. 조선족들은 흑룡강이나 연길 등 중국 북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한족들은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경기도 안산이나 대림동, 구로 등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여 안산, 대림동과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며,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거리에는 중국동포들의 이국적인 정취가 묻어나게 되었다. 값싼 방값, 편리한 교통, 안산 등지의 수도권 공장 지대와의 근접성 등이 중국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지로 이곳이 선택될 수 있었던 원인으로 보인다. 한·중 수교라는 정치적 사건이 중국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 유입을 가져왔으며, 그들이 여러 가지 이점을 가진 구로구의 한 공간으로 모이게 되면서 그 공간을 점유하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