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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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里峯市場 |
영어음역 | Garibong Sijang |
영어의미역 | Garibong Market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사문 |
[정의]
1984년 시인 박노해가 가리봉시장을 소재로 하여 지은 현대시.
[개설]
「가리봉 시장」은 박노해가 1970~1980년대 구로구 가리봉시장을 배경으로 부근 공장노동자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 자유시이다. 노동자 시인인 박노해[노동 해방을 뜻하는 필명]는 「가리봉 시장」을 통해 사회 변혁 운동의 세기이자 열정과 연대의 세기였던 1980년대를 통과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의 허기와 분노, 소박한 행복을 가리봉 시장을 배경으로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고된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에 ‘허기지고 지친’ 노동자들의 비애가 그들의 순수함으로 인해 더욱 깊게 느껴진다. 구로공단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가리봉시장은 ‘명동’에 버금갈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고 번성했다고 한다. 시 속에서는 ‘자유로운 새’가 될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구성]
총 6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밤의 가리봉시장은 1연에서 ‘따스한 열기가 오르’는 공간으로 시작되어 마지막 연의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 길로 발길을 돌리’는 공간으로 마무리된다. ‘스테이크 잡수시는 사장님’의 ‘화려한 백화점’과 ‘공돌이 공순이’의 ‘가리봉시장’이 대조됨으로써 계급적 대립과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내용]
가리봉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마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긴 노동 속에 갇혀 있던/ 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껀수 찾는 어깨들도 뿌리뽑힌 전과자도/ 몸부벼 살아가는 술집여자들도/ 눈을 빛내며 열이 오른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리봉 시장을 찾아/ 친한 친구랑 떡볶기 500원어치, 김밥 한 접시,/ 기분나면 살짜기 생맥주 한 잔이면/ 스테이크 잡수시는 사장님 배만큼 든든하고/ 천오백원짜리 티샤쓰 색깔만 고우면/ 친구들은 환한 내 얼굴이 귀티난다고 한다.//
하루 14시간/ 손발이 퉁퉁 붓도록/ 유명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고급오디오 조립을 해도/ 우리 몫은 없어,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눈부시게 구경하며/ 이번 달엔 큰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앞판 시다 명지는 이번 월급 타면/ 켄터키치킨 한 접시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고/ 마무리 때리는 정이는 2,800원짜리/ 이쁜 샌달 하나 보아둔 게 있다며/ 잔업 없는 날 시장가자고 손을 꼽는다.//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 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 만든 제품을/ 화려한 백화점으로,/ 물 건너 코큰 나라로 보내고 난/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 두며/ 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특징]
「가리봉 시장」은 기교를 통한 시적 형상화를 지양하고 시의 추상화와 관념화를 경계한다. 대신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소박하고도 구체적인 욕망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이들의 계급적 순수함을 증명한다. 또한 일상의 구체적 시어의 사용은 노동 소외와 계급 불평등을 고발하는 주제 의식에 대하여 시적 진정성의 기반으로 기능한다.
[의의와 평가]
「가리봉 시장」이 수록된 『노동의 새벽』이 보여준 ‘구체적 현장성’과 ‘실천적 운동성’에 대한 이 시기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한편 채광석은 이러한 시적 성향이 도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평을 한 바 있으며, 김정환은 그의 시가 “미학적으로 노동자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이며 “2분법을 고수하는 것은 상업주의적 대중문학뿐이라”고 혹평을 날린다. 이러한 혐의는 「가리봉 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우려 섞인 혹평에도 불구하고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통과하지 않고는 영광과 좌절의 1980년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영원히 1980년대의 한복판에 자리매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