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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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亭詩 |
영어음역 | Chojeongs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인천광역시 계양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조성면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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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규보(李奎報)[1168~1241] |
창작연도/발표연도 | 1220년 |
[정의]
1220년 문신 이규보가 계양의 초정을 다시 짓고 나서 지은 한시.
[개설]
「초정시(草亭詩)」는 1220년(고려 고종 7)에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계양부사로 재직할 때 무너져 버린 초가로 지은 정자, 곧 초정(草亭)을 다시 지으며 풍광을 노래한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초정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770번지 부근에 있었다. 1219년에 계양도호부 부사로 좌천되어 부임한 이규보가 지은 「계양(桂陽)의 초정기(草亭記)」를 보면 “상국 허홍재(許洪材)가 터를 잡아서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다음의 태수였던 이실충(李實忠)이 물을 끌어다 못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 현판을 땀을 식히는 곳이라 척서정(滌暑亭)이라 하였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이 띠 풀로 덮은 정자라 오히려 초정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풍수의 말을 믿고 헐었던 척서정을 1220년 6월 이규보가 재건하여 완성하니 촌로들의 권에 따라 「계양의 초정기」를 지어 현판에 써서 걸었다고 한다.
[구성]
5언 20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착암통용유(鑿岩通湧溜)[바위를 뚫어 갇힌 물을 통하게 하고]
저소과비영(瀦沼跨飛欞)[괸 늪에 날 듯한 정자가 걸터앉았다]
망공부어정(望恐浮漁艇)[바라보니 고깃배가 뜬 듯하고]
내의입화병(來疑入畵屛)[와서 보니 그림 병풍에 든 듯하네]
수선응축이(水仙應蓄異)[수선은 아마 기이함을 쌓을 것이요]
지오정저령(地娛正儲靈)[지온은 정히 신령을 담았을 것이라]
야색첨전옹(野色簷前擁)[들 빛을 처마 앞에서 안아 보고]
천성좌저청(泉聲座底廳)[샘물 소리는 자리 밑에서 듣누나]
청풍당하족(淸風堂夏足)[청풍은 여름이 되어 만족하고]
백로미추령(白露未秋零)[백로는 가을이 아닌데도 떨어지네]
금선전민체(錦蘚纏珉砌)[비단 이끼는 옥섬돌에 엉기고]
빙장동옥병(氷漿凍玉甁)[빙장은 옥병에서 어누나]
수천증원조(岫穿增遠朓)[산이 뚫리어 더욱 멀리 바라보이고]
동활조하령(洞豁助遐聆)[골이 넓어 먼데 소리 들리네]
수탁고당벽(樹卓高幢碧)[나무 높으니 높은 기가 푸른 듯]
송장언개청(松張偃盖靑)[소나무 드리우니 푸른 우산 펴 놓은 듯]
허공증상지(許公曾相地)[허공은 일찍 지형을 보았고]
이수시개정(李守始開亭)[이 군수는 처음 정자를 지었네]
욕배감당영(欲配甘棠詠)[감당의 읊음을 짝하고자]
중영각차명(重營刻此銘)[다시 경영하여 이 명을 새기네]
[특징]
전임 부사였던 허홍재와 이실충이 지어 놓은 초정이 무너지자 이규보가 이를 다시 복원한 다음, 초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을 노래한 작품이다. 연못 위에 지어진 초정이 흡사 고기잡이배나 병풍처럼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초정의 아름다움과 초정을 다시 짓고 난 다음의 소회를 표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 문학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시화집(詩話集) 『백운소설(白雲小說)』과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을 남긴 문인의 작품답게 짜임새와 묘사가 뛰어나다. 일상의 소재를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며, 과거 구로였던 계양도호부 풍광과 자연을 노래한 지역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