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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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邑地-富平說話 |
영어음역 | Doeupjiro Jabatdeon Bupyeong Seolhwa |
영어의미역 | Tale of The Seat of Government Bupyeo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인천광역시 부평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미경B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조선의 도읍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도읍지로 잡았던 부평 설화」는 과거 구로구가 속해 있었던 옛 부평부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서, 부평부가 안타깝게 조선의 도읍지가 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1997년 구로구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구로구지』와 2007년 부평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평사』 2권 중 부평 지역의 설화에 일부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후에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자 했다. 그래서 당시 풍수지리에 밝았던 무학대사로 하여금 도읍지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게 하였다. 무학대사가 도읍지 후보로 지정한 곳 중 한 곳이 바로 부평 지역이다. “대사, 대사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새 도읍지를 한 번 물색해 주시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소? 잘 부탁하오.”
이성계의 부탁에 무학대사는 한양을 거쳐 부평 땅에까지 이르렀다. “이곳은 들이 넓고 비옥하여 새 나라의 수도로 삼을 만하군.” 무학대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우연히 무학대사의 혼잣말을 들은 부평 고을의 한 남자가 이 사실을 크게 외쳤다고 한다. 남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이 도읍이 된다는 사실에 이 이야기를 분주히 이곳저곳에 옮겼고, 곧 이 것은 부평 지역의 갓난아이까지도 아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들떠 있었지만 결국 부평 지역은 도읍지가 되지 못했다. 후에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이 무학대사에게 가서 일을 따지니 무학대사는, “도읍지가 되려면 백 개의 고개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곳은 아무리 세어 보아도 아흔 아홉 개의 고개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마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처음 무학대사의 말을 들은 남자가 그 말을 크게 소리치느라 무학대사의 탄식이 섞인 혼잣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때 무학대사가 있었던 그 주변의 지역을 원통하다는 뜻에서 원통골이라 불렀고, 후에 그 명칭은 원통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도읍지로 잡았던 부평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풍수지리 사상’, ‘아홉수 관념’, ‘원통골의 유래’ 등이다. 풍수지리에서 보는 도읍지의 조건은 지세(地勢)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에 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을 막는 폐쇄성뿐만 아니라, 그에 반대되는 요소로 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도읍지로 잡았던 부평 설화」에 따르면 이러한 조건 이외에 골짜기가 100골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학대사에 따르면 부평은 골짜기가 99골 뿐이라서 도읍지 선정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홉수 모티프이다. 아홉수 모티프는 9, 19, 29와 같이 아홉이 든 수를 꺼리는 것으로, 예를 들어 남자 나이에 이 수가 들면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일을 꺼리게 된다. 「도읍지로 잡았던 부평 설화」에서도 도읍이 되기 위해서는 100개의 골이 있어야 하지만 그 수에서 1개가 부족한 아홉수를 보여줌으로써 도읍으로서의 불완전한 부평부의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