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5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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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冬-魚-孝道-梧柳洞-尹孝子 |
영어음역 | Eomdonge Ingeoreul Jaba Hyodohan Oryudongui Yunhyoja |
영어의미역 | Tale of Good Son Yun Who Gripped a Carp in a Severe Winter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인천광역시 계양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경B |
성격 | 효행설화|효행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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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윤효자|윤효자 어머니|마을사람 |
관련지명 | 오류동 |
모티프 유형 | 효자의 지극정성|잉어 뛰어 나오기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윤효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엄동에 잉어를 잡아 효도한 오류동의 윤효자」는 한 겨울에 잉어를 잡아 노모를 봉양했다는 윤씨 가문의 효행담이다. 구로구 오류동은 옛 수주읍 소재지로 부평도호부 때는 황어면 지역이었다. 이 마을에는 오리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오리울, 오릿골, 오류올, 오류동이라고도 했다. 오리울이 생긴 유래를 살펴보면, 1595년(선조 28) 윤명선(尹明善)[1547~1608]이 부평도호부 부사가 되어 부임해 보니 옛 수주 때 명재상 윤관이 수주지주사를 지냈음을 감명 깊게 생각하고 치사가 끝나자 이곳에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그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어 7효자 4정려가 나온 효자 가문으로 일컬어졌다. 한편, 마을의 구성이 오리울, 넘말, 아랫말로 구분되어 ‘오리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서 오리울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8월 31일 인천광역시의 인터넷신문 『인천뉴스』에 설화의 전문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구로가 속해 있던 부평부의 오류동 마을은 조선시대에 효자의 마을로 명성이 높았다. 임진왜란 직후 부평부사를 지낸 윤명선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터를 잡은 이후로 파평윤씨가 대대로 살고 있는데, 그들 일가가 모두 효성이 깊었다. 윤씨 가문에서도 정직하고 가난한 선비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내가 잘 모시지 못해 아버님이 장수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님만이라도 잘 모셔야지.”라고 생각하며 선비는 밤이면 어머님 잠자리가 편안하신지 꼭 여쭙고 아침에 일어나면 잘 주무셨는지 살피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의 도리를 다하였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였다. 어머니의 환갑잔치 날에는 어린아이처럼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었으며, 남의 집 잔치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대하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매에 넣어 와서 그것을 어머니께 드렸다. 이러한 보람도 없이 어느 날인가 홀어머니가 병들어 누우셨고, 그 효자의 보살핌과도 상관없이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깊어만 갔다. “아, 어떻게 하면 내 어머님을 낫게 할 수 있을까.”하고 선비는 온갖 약을 구해 보았지만 늙은 어머니는 차도가 없으셨다.
그때는 온 천지가 흰 눈에 덮이고 눈보라가 치는 겨울이었다. “어머님, 잡숫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들의 말에 어머니가 대답했다. “얘야, 잉어를 한 마리 고아 먹었으면 좋겠구나.” 윤효자의 어머니는 모든 호수와 시냇물이 얼어붙은 한겨울에 그것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하지도 못할 정도로 늙어버렸던 것이다. 아들은 걱정이 앞섰으나 어머니 앞에서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 꼭 구해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저곳 얼어붙은 호수와 시내를 찾아다니며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루, 이틀, 사흘 ……. 그는 얼어붙은 겨울 벌판을 헤매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의 손발은 동상에 걸렸으며, 얼굴도 점점 야위어만 갔다. “쯧쯧쯧, 노망든 노인네의 소원을 들어 주느라 아들이 먼저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겠군.” 하고 이웃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만 아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오늘도 잉어를 못 잡았구나.’ 생각하며 아들이 지친 몸을 간신히 이끌고 부평 평야의 드넓은 벌판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수로의 얼음이 툭툭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얼떨결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아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넓적다리만한 잉어 한 마리가 얼음을 뚫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잉어는 펄떡펄떡 뛰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마치 어서 자기를 잡아다가 늙은 어머니 약으로 쓰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고맙구나, 잉어야.” 아들은 잉어를 잡아 품어 안았다. 아들이 잉어를 정성스럽게 온갖 좋은 약재와 함께 고아 어머님께 드렸다. 그리고 늙은 어머니는 이것을 먹고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들의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엄동에 잉어를 내려 주셨고, 그래서 늙은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고 윤효자를 칭송했다. 그 뒤 이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귀감으로 삼아 늙은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게 되었다고 한다.
윤씨 집안에서는 그 후로도 계속하여 효자들이 줄을 이어 나왔고, 조정에서는 그들을 표창하는 효자 정려문을 넷이나 내려 보내 그들을 세상의 모범으로 삼게 했다. 이 마을 산기슭에는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윤기파·윤정·윤서·윤상우 등의 정려각 네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동네 아이들이 새를 잡는다고 불을 놓다가 그만 불이 정려각에 옮겨 붙어서 모두 불타고 말았다고 한다. 그 당시 조선은 일제에게 강제로 합병을 당했기 때문에 다시 정려각을 내려 보낼 수가 없었다. 정려각은 사라졌으나 선조의 효도 정신은 지금도 그들 가문에 핏줄을 타고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엄동에 잉어를 잡아 효도한 오류동의 윤효자」의 주요 모티프는 ‘효자의 지극정성’, ‘잉어 뛰어 나오기’ 등이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잉어이다. 이런 ‘잉어 약어(躍魚)’의 모티프와 관련된 설화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효자설화, 태몽설화, 보은설화 등이 있다.
「엄동에 잉어를 잡아 효도한 오류동의 윤효자」는 대표적인 효행설화이다. 잉어는 지금도 환자들의 몸을 회복시키는 최고의 보양식품으로 민간요법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강이 얼어붙은 추운 겨울에 잉어를 잡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때, 얼음 속에서 잉어가 스스로 희생제물로서 뛰어 나온 것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효성을 다하기 위하여 애를 쓰면 하늘도 감동하여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우리의 전통적인 효 사상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지역에 따라서는 잉어의 출현 형태에 대한 변이가 있는데, 얼음 속에서가 아니라 강을 건너는 배 위로 뛰어 오른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잉어와 관련된 효자설화가 우리나라 고유의 설화가 아니라는 설이 있다. 손진태(孫晉泰)는 잉어 관련 설화가 중국 왕상(王祥)의 「빙중득리전설(氷中得鯉傳說)」, 사마광(司馬光)의 「파옹구아전설(破甕救兒傳說)」 등 유명한 설화로 수(隋)나라 우세남(虞世南)의 『북당서초(北堂書鈔)』[권158, 穴篇]와 당나라 서견(徐堅)의 『초학기(初學記)』[권7 地部氷條]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타의 설화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고전적(古典籍)이 국내에 수입되면서 함께 들어와서 계승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와 같이 성리학적 측면에서 효가 도덕적인 덕목으로 중요시 되면서 널리 예화로서 이야기되어 마치 우리 고유의 설화인 양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런데 잉어설화는 아시아 거의 전역에 분포하는 비교적 단순한 설화로서 각처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것일 수도 있고, 중국에서 수입되었다 할지라도 지역성과 밀접하게 혼합되고 토착화된 새로운 우리의 설화일 수도 있다.
한편 오류동 마을 산기슭에 윤기파·윤정·윤서·윤상우 등 네 명의 효자에 대한 정려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불을 들고 새를 잡다가 정려각에 불이 붙어 소실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바로 「새 잡다 소실된 정려각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