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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리고개 설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567
한자 -說話
영어음역 Piheulligogae Seolhwa
영어의미역 Tale of Spilling Blood Pass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경기도 시흥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명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략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신립 장군|여인|왜군
관련지명 피흘리고개
모티프 유형 다자귀야를 외친 여인의 기지와 용맹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피흘리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피흘리고개 설화」는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1546~1592] 장군의 부하 아내가 적진에 들어가 모두 잠들어 있다는 의미의 암호 ‘다자귀야’를 부르자 이를 틈타 왜군을 크게 쳐부수어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는 여인의 지략담이다. 또한 적들이 너무 많은 피를 흘렸으므로 ‘피흘리고개’라 명명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피흘리고개는 조남동 묘재마을에서 골월로 넘어가는 길에 있다.

[채록/수집상황]

시흥문화원 홈페이지에는 과거 구로지역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던 시흥시의 조남동 주민 어르신들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를 녹취하여 정리한 「피흘리고개 설화」가 실려 있다.

[내용]

조남동 묘재마을에서 골월로 넘어가는 고개를 ‘피흘리고개’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임진왜란 때 방어군 총지휘관인 신립 장군은 휘하 군대를 ‘삼천병마골[三千兵馬谷: 조남동 남왕마을 서쪽으로 현재 대흥산업 등이 있음]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적정(敵情)을 살피고 있었으며, 왜군들은 현재 ‘피흘리고개’라고 부르는 고개에 진을 치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쌍방이 서로의 사정을 살피면서 싸움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상대방의 사정을 잘 알 수가 없어 망설였다. 삼천병마골의 신립의 군대는 기다리다 못해 적정을 살필 궁리를 짜고 있었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한 군사의 아내가 자진하여 신립 장군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대장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묘안이 나서지 않던 장군은 반가우면서도 나서는 인물이 여자임에 적이 놀랐으나, “무슨 묘안이 있단 말이냐? 어서 말하여 보아라.”라고 명하였다. 그 여인은 이윽고 말을 꺼내었다. “적진에 쳐들어가려면 적군들이 잠자고 있는 틈을 이용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겠습니까? 저에게 한 꾀가 있습니다. 제가 단신으로 그곳에 가서 이렇게 외치겠습니다.”

신립이 “어떻게?”라고 물었다. 그 여인은 자세한 설명 대신에, “하여튼 제가 가서 소리치겠는데 ‘다자귀야’ 소리가 계속 들려오면 저쪽 군사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으로 여기시고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십시오. 그러나 ‘다자귀야’가 아니고 ‘더자귀야’하는 소리가 들리거든 그대로 이 자리에서 지키십시오.”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고개에 진을 치고 있는 적군을 향하여 달려갔다.

이윽고 적진 진지 깊숙이 들어갔다고 생각되었을 때 여인은 그곳 병사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다자귀야! 더자귀야!”를 외쳤다. 한 두어 번 되풀이하였을까 말까 한데 왜군 병사가 나타나서 이 여인을 잡았다. “어디 사는 누구인데 이 밤중에 누굴 찾느냐?” 여인은 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사실은 내 아들이 둘이 있습니다. 큰놈 이름은 ‘다자귀’요, 둘째 놈은 ‘더자귀’인데 두 놈 다 전쟁터에 끌려가 생사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삼천병마골 진터에 가서 찾아도 아들놈은 없어서 이번엔 이 고개로 와서 찾는 겁니다. 다자귀야! 더자귀야!”

이렇게 되자 그 왜군 병사는 이 여인의 입을 막으면서, “이것 봐요. 모두들 고단해서 옷을 다 벗고 곤히 자고 있는데 소리 지르지 말아요. 우리 군사 중엔 그런 이름 가진 사람 없어요. 어서 저리가요. 나도 곧 잠 좀 자야겠소.”하면서 이 여인을 내몰았다. 이 여인은 짐짓 울음을 터뜨리면서 돌아섰다. 그러나 더 큰 소리로 “다자귀야! 다자귀야! 다자귀야!”하면서 큰아들 이름인 ‘다자귀야’만을 되풀이하면서 외쳤다. 이윽고 그 외침을 자기편 군대가 진을 친 삼천병마골 신립 장군에게까지 들렸다. 이리하여 삼천병마골에 진을 쳤던 군사들은 일제히 기습을 강행하여 이 고개에 진을 쳤던 왜적을 아주 쉽게 섬멸하고 이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어찌나 많은 적을 없앴는지 그때 흘린 피가 이 고갯마루에서 냇물을 이루며 흘러내려 그 후로는 이 고개 이름을 ‘피흘리고개[血晛]’ 또는 ‘피흘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티프 분석]

「피흘리고개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다자귀야를 외친 여인의 기지와 용맹’이다. 임진왜란 때 적군이 모두 자고 있으면 다지귀야이고, 깨어 있으면 더자귀야라고 하며 적진의 상황을 신립 장군에게 알려서 손쉽게 적군을 무찔러 승리를 하게 했으니, 후대인들은 이 여인의 기지와 용맹성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시흥문화원(http://sh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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