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505 |
---|---|
한자 | 山神祭 |
영어음역 | Sansinje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
이칭/별칭 | 동제,산제,산치성,산제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집필자 | 김영순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산신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는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이다. 이를 동제, 산제, 산치성, 산제사 등이라고도 한다. 산신에 대한 인간 본래의 소망은 안전 보호를 바라는 데 있었으나 후에는 풍작이나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데 있었다. 산신제의 정확한 연원은 고대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문헌에 기록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국조보감(國朝寶鑑)』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덕적산(德積山)·백악(白岳)·송악(松岳)·목멱산(木覓山) 등의 산신에게 매년 봄·가을에 내시(內侍) 및 무당과 여악(女樂)으로 하여금 제사하게 하였는데, 이를 기은(祈恩)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산신제의 풍속은 계속되었다. 사악신(四岳神)으로서 남은 지리산, 중은 삼각산(三角山), 서는 송악산(松岳山), 북은 비백산(鼻白山)을 정하여 제사하였다. 또 산천신(山川神)으로서 동은 치악산(雉岳山), 남은 계룡산(鷄龍山)·죽령(竹嶺)·우불산(于弗山)·주흘산(主屹山)·금성산(錦城山)·한라산(漢拏山), 중은 목멱산, 북은 감악산(紺嶽山)·의관령(義館嶺)·백두산(白頭山)에 제사하였다.
위의 사악신과 산천신 제사는 나라에서 관장하였는데, 대개 제단을 마련하거나 단이 없으면 3칸의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모두 각각의 신위(神位)를 두어 신좌(神座)는 북남향으로 하고, 중춘(仲春)·중추(仲秋) 두 번씩 한재·수재·병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사하였다. 한편 민간에서는 각 주·읍에 반드시 그 북쪽에 진산(鎭山)을 정하고, 그 곳에 산신당을 지어 진호신(鎭護神)을 모시고 봄·가을과 정초에 제사하는 풍속이 있었다. 지금은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봄가을에 지내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구로 지역에서는 항동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항동에서의 산신제는 ‘항골 산신제’로 명명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항동은 김해김씨가 들어와 처음 정착하였고, 이후 전주이씨와 순흥안씨가 차례로 이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마을의 대소사가 이들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길흉사도 서로 힘을 합쳐 처리하였다. 이렇게 세 성씨가 화합을 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기적으로 신당에 제를 올려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게 되었다.
이들이 동제를 지낸 곳은 산신당, 서낭당, 장군당, 용신당 등 여러 이름을 지닌 신당이었는데 신목인 전나무가 있었다. 현재 신목은 고사하였고, 신당 또한 흔적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정월 대보름에는 동신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축복을 구했다. 산신제는 10월 상달에 시행되며, 이때 정월에 빌었던 기원이 성취되었음에 대한 농공제를 드리고 아울러 성주제를 행하였다.
[절차]
제주(祭主)는 김씨, 이씨, 안씨의 세 성씨가 돌아가면서 유사를 맡았는데 지금은 이 규례를 충실하게 아는 이가 없어 약식으로 정한다고 한다. 제주로 선임되면 제일의 3일 전에 먼저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 주위를 청소한 다음 황토를 펴고 솔가지를 꺾어 새끼에 매달아 금줄을 쳐 놓는다. 또한 제주의 집문 밖도 깨끗이 쓸어 놓고 상중이거나 기타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다.
제주는 자정부터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제단으로 가서 불을 켜 놓은 후 밥, 나물, 떡, 어육, 과실, 술 등을 차려 놓고 다음 날 0시에 산신 제문을 낭독하면서 제사를 지낸다. 이날 오전에 마을 사람들은 모임을 갖고 제사 비용 지급 및 산제 상황에 대해 논의를 하고, 이듬 해 제사 비용 및 그 밖의 준비에 관한 사항을 결의하고 유사를 결정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서울 정도 600년에 즈음하여 항골 산신제를 무형문화재로 전승시키기 위해 1993년 11월 17일 항동의 김광태 노인회장, 김학배, 안기남, 김광홍 등이 제관이 되어 특별한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에 지낸 산신제는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에 보도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4년 2월 10일 밤[음력 설날]에는 김광태 노인회장과 김정진 전 오류2동장이 KBS 「한밤에 만난 사람」에 출연하여 항골 산신제에 얽힌 유래에 대하여 40여 분 간 대담하였다. 이와 같은 산신제는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부락제(部落祭)』에 의하면 전국의 부락제 522개 중 산신제에 해당하는 것이 176개나 되는데, 산신제의 풍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