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1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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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中 |
영어음역 | Baekjung |
영어의미역 | The Buddhist All Souls´ Day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집필자 | 김영순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풍속.
[개설]
백중은 음력 7월 보름에 남녀가 모여 온갖 음식을 갖추어 놓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던 풍속이다. 이를 백종일(百種日), 망혼일(亡魂日), 중원(中元) 등이라고도 한다. 백종은 이 무렵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연원 및 변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의하면 “7월 15일 백중날에 각 사찰에서는 죽은 이를 위하여 그의 위패를 불단에 세우고 재(齋)를 모시며 재가 끝나면 그 위패를 불사르는데, 이 의식은 일반 가정집에서 제사 지내는 의식과 똑같다.”고 한다. 원래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하나인 목련존자가 지옥의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시행했다는 『우란분경(盂蘭盆經)』의 설화에서 유래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의 세계에 빠져 고통을 받고 있음을 보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7월 15일 승려들이 모두 모여 참회하는 자자(自恣)를 행할 때 음식 등을 보시함으로써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구제되었다고 한다. 백중 행사는 불교의 자자·보시 사상과 중국의 중원·효 사상이 합쳐져 효를 강조하는 중국·한국·일본에서 중시되었다.
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중국에서 538년에 실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부터 행했다고 하며, 『고려사(高麗史)』에는 1106년 이래 여러 차례의 실행 기록이 있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 날이 오면 항상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베풀었다. 오늘날 불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는 기록에 의하면, 백중은 불가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겠다. 고려시대에는 우란분회를 열어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에는 억불 숭유 정책으로 승려들만의 불교 의식이 되고 말았다. 또 조선 후기에 간행된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록에 의하면, 우란분회 때 승려들이 발을 닦아 발뒤꿈치가 하얗게 되어 백종(白踵)이라 한다는 설도 있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절차]
백중날에는 차례를 지내는데, 그러기 위하여 산소에 벌초를 하고 성묘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씨름·장치기[手傳] 등의 놀이로 내기도 한다. 승려들은 이날 각 사찰에서 재를 올린다. 오늘날 구로에서는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관음포교원, 정암사, 상용사, 다보사, 관음사, 원각사, 청암사, 한국불교 태고종 산하 금선사, 성봉정사, 용군사, 지리암, 대한불교 천태종 산하 명화사 등에서 백중절을 지낸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짓다’[‘농사짓다’의 옛말]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천신 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는 한편 더위로 쇠약해진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