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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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電子勞動爭議 |
영어음역 | crownjeonja Nodongjaengui |
영어의미역 | crownjeonja Labor Difficultie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창환 |
성격 | 노동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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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72년 2월 3일 |
종결연도/일시 | 1972년 2월 12일 |
관련인물/단체 | 크라운전자 근로자 |
[정의]
1972년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었던 크라운전자에서 일어난 노동 운동.
[개설]
크라운전자[대표 윤봉수]는 1969년 12월 경제기획원으로부터 회자 업체로 승인을 받은 자본금 46만 달러의 한일 합작 투자 업체[각 50% 투자]로, 텔레비전·녹음기 등을 전량 보세 가공하는 업체였다. 종업원 수는 1972년 현재 남자가 230여 명, 여자가 500여 명이었다.
[발단]
크라운전자는 원래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전자 제품 회사였던 만큼 근로 조건이 매우 열악하여 월평균 임금이 1972년 당시 6,500원이었다. 게다가 연장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일부 부서에서는 휴일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신입 근로자에게 시중 가격이 500원 정도인 작업복을 950원씩 계산하여 봉급에서 공제하고, 흰색 실내화를 강제 착용하게 해 250원씩 받았으며, 휴식 시간과 퇴근 시간에 특별 작업을 강요하였다. 게다가 근로자들에게 걸핏하면 폭언을 일삼고 구타까지 자행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72년 1월 27일에는 검사 조장 장종철이 출근하여 난로를 쬐고 있는데 반장 김기조가 “왜 실내화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장에 들어왔느냐?”고 하면서 발로 걷어참으로써 이를 목격한 동료 검사반원들[9명]이 울분을 터뜨려 집단 사표를 제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봤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고 다른 근로자들이 만류하면서 근로자의 유일한 자기 보호 단체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자는 분위기로 바뀌게 되었고, 크라운전자 노동 쟁의를 촉발시켰다.
[경과]
1972년 2월 3일 근로자 46명이 영등포구 대림동의 중국음식점 영화루에 모여 금속 노조 영등포 지부 크라운전자 분회[분회장 김보이, 부분회장 문경주, 이순식]를 결성하였다. 한편 회사 측은 노조가 결성되자 조합원들의 부서를 이동시키고 온갖 위협과 회유로 노조 탈퇴를 강요하여 46명 중 26명[남자 9명, 여자 17명]이 회사의 압력에 굴복하여 노조를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결과]
1972년 2월 7일 금속 노조 영등포 지부는 크라운전자 노조 결성 사실을 노동청에 신고하였는데 노동청은 일부 조합원의 강제 탈퇴를 이유로 크라운전자 노조가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결성된 노조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1972년 2월 11일 신고서를 반려하였다. 결국 노동청과 회사는 근로자들의 근본적인 문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근로자들의 요구 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