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7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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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源万 |
영어음역 | Lee Wonm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장경호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
[활동사항]
이원만(李源万)[1904~1994]은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언적(李彦迪)의 15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석정(李錫政), 어머니는 이사봉(李泗峰)이다. 17세까지 향리에서 한학을 배우면서 4년제 사립학교에서 신학문을 수학하고 흥해공립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30년 영일군 산림기수보로 취직하였고,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하여 1935년 아사히공예주식회사[朝日工藝株式會社]를 설립하였으며, 1937년 아사히피복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41년 일본대학을 중퇴하고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귀국하여 대구에서 경북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49년 재일한일경제동우회 부회장, 1951년 삼경물산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1953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나일론을 소개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구로공단과 구미공단 조성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956년 재일한국인무역협회 회장, 1957년 한국나이론주식회사 회장을 지냈고, 1960년 경상북도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참의원에 당선되었다.
1963년 3월 구로동에 들어설 한국수출산업공단 조성에 힘을 기울여 수출산업촉진위원회 위원장, 수출산업공단 발기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구로동 지역에 국유지 약 330,578.51㎡를 불하받아 수출 산업 촉진 기반을 조성하였다. 1966년 국제연합한국협회 부회장에 피선되었고, 동대구역 건설 추진위원장, 대한속기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농림분과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8년 삼경개발주식회사 사장, 1972년 삼경개발 회장, 1976년 코오롱그룹 회장, 1977년 코오롱그룹 명예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81년 오운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94년 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나의 정경오십년』[1994]을 남겼다.
[상훈과 추모]
1967년 한국수출산업공단 준공식에서 대통령 유공 표창, 1968년 대통령상, 1977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4년 세상을 떠난 뒤 금탑산업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