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656 |
---|---|
한자 | 成禹慶 |
영어음역 | Seong Ug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정진 |
[정의]
개항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농민운동가.
[개설]
시흥농민운동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는데, 시흥군 관리들의 탐학과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의 반란이었다. 제1차 시흥농민운동은 1898년(고종 35) 음력 7월 9일 시흥 읍내[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발발하여 관속배가사 9호가 파괴되고, 집물 등이 파손되었다. 1904년 9월 14일 일어난 제2차 농민 봉기는 개항 이후 열강들의 이권 침탈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일본이 철도 부설을 위해 노역자들을 강제 모집하는 데서 항쟁이 발생되었다.
[활동사항]
성우경은 1898년과 1904년 두 차례에 걸친 시흥농민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농민측 협상 대표로 선정되어 일본의 내정 간섭으로 더욱 심각해진 부역 모집에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농민들을 규합하여 관공서 등을 공격하였다. 제1차 시흥농민운동 결과 성우경과 아전배 3인이 구속되었고, 시흥 한천변[현 광명시 소하동]에서 벌어진 제2차 항거에서는 수천 명이 운집한 결과 일본인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