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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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吉用 |
영어음역 | Yi Gily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진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이자 언론인.
[활동사항]
이길용(李吉用)[1899~?]은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태어났다. 호는 파하(波荷)·월강(月江)이다. 아버지는 이치상(李致相), 어머니는 이복순(李福順)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인천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김에 따라 인천에서 영화학교(永和學校)를 마쳤다. 1916년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공부하였으나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1918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의 기밀문서를 철도편로 운송하는 책임을 맡아 활동하다 발각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출감한 뒤 동아일보사 사장이던 송진우(宋鎭禹)의 권고로 동아일보사 체육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1923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전조선여자정구대회를 전담하여 주관하면서 한때는 심판을 보기도 하였다. 1924년 조선일보사로 이적하였고 11월 조선체육회 실무위원이 되었다.
1925년 제1회 전조선축구선수권대회 임원, 전조선중학교농구선수권대회 위원 등을 지냈다. 1927년 송진우의 간곡한 부름을 받고 동아일보사로 다시 돌아와 체육 발전에 헌신하였으며, 다른 신문사 기자들과 뜻을 모아 1927년 8월 서울 영금정(令今亭)에서 조선운동기자단(朝鮮運動記者團)을 조직하여 운동 경기의 전문화에 기여하였다.
1932년 8월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 출전한 김은배(金恩培)와 권태하(權泰夏) 선수가 골인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버렸고, 『신동아』에 「여자정구 10년사」를 연재하였다.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시상식 사진을 『동아일보』에 「명예의 우리 손군 세계제패의 개가」라는 제목으로 실으면서 일장기를 지웠고, 『신동아』에 실린 사진에도 일장기를 지웠다. 이 사건으로 이길용은 사직당하고 『동아일보』와 『신동아』는 각각 정간과 폐간이 되었다.
그 뒤 네 차례에 걸쳐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광복이 되자 조선체육동지회 결성에 적극 참여하여 조선체육회[지금의 대한체육회]를 부활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945년 조선체육회 상무이사로 선임되었고, 이듬해 『동아일보』가 복간되자 사업부 차장으로 복직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서울특별시 고문, 이화여자대학교 이사, 국민당 중앙당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49년 10월 대한체육회 공로상을 받았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989년 한국체육기자연맹에서는 이길용의 공로를 기리고자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