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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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鎭午 |
영어음역 | Yu Jino |
이칭/별칭 | 현민(玄民)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진 |
성격 | 정치인|법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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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서울특별시 |
성별 | 남 |
생년 | 1906년 5월 13일 |
몰년 | 1987년 8월 30일 |
대표경력 | 고려대학교 총장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활동한 법학자이자 정치인.
[활동사항]
호는 현민(玄民). 1906년 5월 13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1987년 8월 30일 사망하였다.
유진오(兪鎭午)는 1929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예과 강사를 거쳐 보성전문학교 법학교수가 되었다. 1927년경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조선지광(朝鮮之光)』·『현대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프롤레타리아문학 전성기 동반작가(同伴作家)로 「갑수의 연애」·「빌딩과 여명(黎明)」 등의 작품을 썼고, 1938년 장편 「화상보(華想譜)」를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위한 제헌 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하면서 1951년 한일회담 대표로도 활약하였다. 1952년 학계로 돌아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장을 거쳐 총장에 취임하였는데, 1953년 국제법학회 회장에 피선,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5·16군사정변 후에는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 유엔 한국협회장이 되었으며, 1964년 대한교육연합회장 등을 역임하고, 1965년 법전편찬위원에 선출되었다. 1967년 정계로 들어가 신민당(新民黨) 총재가 되어 그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 1970년 신민당 고문에 취임하였다. 1974년 고려중앙학원 이사에 취임하고, 1980년 통일원 고문, 국정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학술원 공로상 및 문화훈장을 받았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저수지 뒤편에는 유진오의 소유 임야에 토막집이 한 채 있다. 일명 유진오 별장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1989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불타고 한쪽 벽만 남아 있다. 이 별장이 있는 옆길을 따라 약 2㎞ 더 가면 궁동약수터가 있다. 유진오 별장 못 미쳐 삼거리에도 유진오 집이라는 별장 형태의 조그만 양옥이 있다. 붉은 벽돌로 건축한 이 집의 내부에는 페치카가 있어 마치 그림 속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유진오가 가끔씩 거주하며 글을 썼던 곳이라고 한다. 약수터 쪽의 별장은 이따금 산책을 하며 기거하던 곳이라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저서에 『헌법해의(憲法解義)』·『헌법강의(憲法講義)』·『민주정치의 길』·『젊은 세대에 부치는 서(書)』 등이 있고, 문학 작품으로 『유진오(兪鎭午) 단편집』·『김강사(金講師)와 T교수』·『창랑정기(滄浪亭記)』, 수상집에는 『구름 위의 만상(漫想)』·『젊은 날의 자화상(自畵像)』·『양호기(養虎記)』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학술원 공로상 및 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