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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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彙晉 |
영어음역 | Yi Hwijin |
이칭/별칭 | 중진(仲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정진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중진(仲進). 증조할아버지는 이천규(李天圭)이며, 할아버지는 이찬원(李纘元)이고, 아버지는 이경화(李景華)이다. 어머니는 최주명(崔柱溟)의 딸이다. 부인은 박수검(朴守儉)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휘진(李彙晉)[1680~?]은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19년(숙종 45) 사헌부장령을 지냈으며, 1721년(경종 1)에도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임인년(壬寅年)의 옥사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줄 것을 주장하였으며, 자신의 삼수설(三手說)을 피력하였다.
1725년(영조 1)에도 사헌부장령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이잠(李潛)의 추증 직책을 삭탈하고 역적들을 훈적(勳籍)에서 제거하여 임인년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해소할 것을 주청하였다. 이듬해에는 승정원동부승지를 지냈다. 1742년(영조 18) 함안군수로서 외직에 근무하였으며, 1744년 중앙으로 복귀하여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 이듬해에는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의 낭청(郎廳)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