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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60
한자 朴弼明
영어음역 Bak Pilmyeong
이칭/별칭 중량(仲良),인재(忍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58년연표보기
몰년 1716년연표보기
본관 반남(潘南)
대표관직 대사간

[정의]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량(仲良), 호는 인재(忍齋). 증조할아버지는 박원(朴垣)이고, 할아버지는 박세기(朴世基)이다. 아버지는 금창부위(錦昌副尉)를 역임한 박태정(朴泰定)이며, 어머니는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딸인 경녕궁주(慶寧宮主)이다.

[활동사항]

박필명(朴弼明)은 1697년(숙종 23)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의 검열과 봉교를 역임하였다. 1701년(숙종 27) 이후 정언·지평에 여러 번 임명되었으며, 그 해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무역을 금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1702년(숙종 28) 시강원사서에 임명되고, 다음 해 도당록(都堂錄)에 수석으로 올라 부수찬·부교리가 되었다. 1704년(숙종 30) 관북의 기근을 구하기 위해 감진어사(監賑御史)로 파견되었다. 이후 수찬·헌납·교리 등을 지내면서 남구만(南九萬) 등을 두호하는 등의 언론 활동을 하였고, 이어 이조정랑이 되었다. 이듬해 겸사서(兼司書)를 거쳐 승지로 승진한 뒤 대사간에 올랐다.

1708년(숙종 34)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가, 다음 해 금위군(禁衛軍) 동원을 소홀히 한 죄로 나문(拿問)당하였다. 곧 용서받고 도승지가 되었으나 다시 추고를 당하였다. 1710년(숙종 36) 도승지에 복귀하여 다음 해 경기도관찰사가 되었고, 1714년(숙종 40)에는 구로 지역을 관할하는 부평부사로 4개월간 봉직하였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대사헌과 도승지를 거듭하였다. 삼사(三司)의 관직을 두루 지냈으며, 숙종의 사랑을 받아 오랜 기간 승지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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