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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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箕翊 |
영어음역 | Yi Giik |
이칭/별칭 | 국필(國弼),시은(市隱),양정(良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모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국필(國弼), 호는 시은(市隱). 할아버지는 종친의 후예인 봉래수(蓬萊守) 이형윤(李炯胤)이고, 아버지는 이무(李堥)이며, 어머니는 공조판서를 역임한 최내길(崔來吉)의 딸이다.
[활동사항]
이기익(李箕翊)[1654~1739]은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694년(숙종 20) 성균관 유생을 이끌고 유림의 종장이었던 송시열(宋時烈)의 신원(伸寃)을 위해 상소를 올리는 데 주동적인 일을 하였다. 2년 뒤에는 종실의 후예라는 신분으로 참봉에 기용되었고, 1703년(숙종 29) 4월 5일 지금의 구로구를 관할하는 부평부사에 임명되었지만, 5월 24일 영동현감으로 이임되었다.
1713년(숙종 39) 60세의 나이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지평·사헌부정언·사헌부장령·사헌부헌납·사간원집의 등 대간직을 번갈아 역임하다가 1717년(숙종 43) 승정원좌부승지에 발탁되었다.
이후 승지와 대사간을 역임하고 강원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다시 사간원대사간과 승정원의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병조참판에 임명되었고, 이어 동지의금부사·사간원대사간·예조참판·승지·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33년(영조 9) 80세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며, 계속 가자되어 1736년 지돈령부사·공조판서 등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정(良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