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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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晳 |
영어음역 | Jeong Seok |
이칭/별칭 | 백야,악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모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야(白也), 호는 악남(岳南). 아버지는 이효준(李孝俊)이다.
[활동사항]
1642년(인조 20) 사마시(司馬試)에 생원으로 합격하였고, 이어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학정(學正)과 정언(正言)을 거쳐 지평(持平)이 되어 1654년(효종 5)에 인조의 후궁인 조숙원(趙淑媛) 문제를 논하다가 영산(靈山)에 유배되었다. 2년 뒤 복관되어 정언·지평·장령(掌令) 등을 역임하였고, 1660년 6월부터 구로 지역을 관장하는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나가 지방관으로 활약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으로 문신정시(文臣庭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이후 수찬(修撰)·교리(校理)·집의(執義)·응교(應敎)를 거쳐 1669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관(倭館)을 동래부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왜인을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는 죄로 파면되었다. 그 뒤 승지와 대사간을 거쳐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1679년(숙종 2)에는 『명사(明史)』 가운데 잘못 기술된 인조반정 기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변무부사(辨誣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