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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43
한자 趙潝
영어음역 Jo Heup
이칭/별칭 흡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661년연표보기
본관 풍양(豊陽)
대표관직 공조참판|부평부사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흡여(潝如), 아버지는 교리(敎理) 조수익(趙守翼)이다.

[활동사항]

광해군 말엽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23년 김류(金瑬)이귀(李貴) 등이 반정을 주도하자,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함께 이천(伊川)에서 군병을 모아 공을 세웠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여 시행된 등극경과(登極慶科)에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지만, 얼마 후 이 시험이 취소되어 관직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반정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 6품관으로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가 되었다.

이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27년 정묘호란 때 강도(江都)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1640년 3월부터 구로 지역을 관할하는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부임하였다가 1642년 6월에 병으로 사임하였다. 이후 공조참의, 여주목사, 광주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 때 한성부좌윤으로 있는 동안에는 범금인(犯禁人)을 제대로 잘 다스리지 못하며 탐학한다는 탄핵으로 파직되기도 하였다. 이후 한성부와 도총부를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1646년 5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풍안군(豊安君)에 봉하여졌으며 광주부윤이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풍안군일기(豊安君日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봉록되었으며, 경목(景穆)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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