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40 |
---|---|
한자 | 宋克訒 |
영어음역 | Song Geukin |
이칭/별칭 | 신백(愼伯),정곡(靜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모 |
[정의]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신백(愼伯), 호는 정곡(靜谷). 할아버지는 송세인(宋世仁)이고,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송초(宋礎)이다.
[활동사항]
송극인(宋克訒)은 1602년(선조 3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서 일하다가 예문관으로 옮겨 검열·봉교·대교를 지냈다. 이후 형조정랑을 거쳐 성균관전적으로 재직하였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 사헌부집의·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면서 김제남(金悌男)을 비롯한 서인과 남인 사람들을 탄핵하는 데 관여하였다. 그 뒤 사간으로 있으면서 폐모론에 가담하고, 남이공(南以恭)과 이원익 등을 탄핵하는 데도 참여하였다.
인조 때는 중화부사가 되었다가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後金)의 군대가 침입할 때 감사에게 알리지 않고 도망쳐서 삭탈관직되었다. 1628년(인조 6) 동지사로 명나라에 가는데, 마침 모문룡(毛文龍)이 사신 일행을 도중에서 기다리다가 은과 인삼을 빼앗으므로 되돌아왔다. 다음 해 동지사 겸 성절사로서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지만, 나라의 체모를 손상시키고 경솔하게 행한 과실이 많다고 탄핵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635년 4월 6일 지금의 구로구를 관할하는 부평부사로 임명되었지만 6월 8일 병으로 사직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성균관전적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