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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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士奇 |
영어음역 | Yang Sagi |
이칭/별칭 | 응우(應遇),죽재(竹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우(應遇), 호는 죽재(竹齋). 아버지는 돈령주부(敦寧主簿) 양희수(楊希洙)이다. 형으로 양사준(楊士俊)과 양사언(楊士彦)이 있으며, 세 형제가 모두 대과에 급제하고 문필이 뛰어나 세상에 평판이 높았다.
[활동사항]
양사기(楊士奇)[1531~1586]는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호조좌랑을 거쳐 원주를 비롯하여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한 부평 등 7읍(邑)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청백(淸白)하여 칭송을 받았다. 선조가 등극한 뒤 상소를 올려 외적의 침범에 대한 방어 대책을 진언하였는데, 과연 뒷날 그 예언이 맞았다. 1586년(선조 19) 병으로 앓아눕자 스스로 죽을 날을 점쳤는데, 그날에 나이 56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