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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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選 |
영어음역 | Seo Seon |
이칭/별칭 | 대숙(大叔),언부(彦夫),해화당(海華堂),신당(莘堂),공도(恭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배성수 |
[정의]
조선 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숙(大叔)·언부(彦夫), 호는 해화당(海華堂)·신당(莘堂).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서염(徐恬)이고, 할아버지는 판내부시사 서진(徐璡)이다.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서원(徐遠)이며, 어머니는 정윤 최홍의(崔洪義)의 딸이다.
[활동사항]
서선(徐選)은 원천석(元天錫)의 문인으로, 1393년(태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한 뒤 이듬해 부봉사(副奉事)가 되었다. 1398년(태조 7)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1400년(정종 2) 문하주서가 되고, 이듬해 주부와 병조좌랑, 이조좌랑겸지제교, 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사헌부장령이 되었으나 계사(啓事)의 잘못으로 왕의 노여움을 사 죽산(竹山)에 유배되었다.
1406년(태종 6) 사헌부집의가 되었다. 1408년(태종 8) 동부대언 경연참찬관 보문각직제학 지제교 춘추관편수관 겸 군기감사, 지공조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이어 1411년(태종 11) 우부대언 겸 군자감사, 지호조사, 이듬해 좌부대언 집현전직제학 겸 판사재감사 지형조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우사간이 되어 말을 잘못 해 지금의 구로 지역 일대가 포함된 부평부사로 좌천되었다.
1415년(태종 15) 우부대언이 되어 동료들과 서얼의 차별 대우를 진언하였다. 예조우참의 우대언을 거쳐, 1417년(태종 17)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1419년(세종 1) 고부겸청시부사(告訃兼請諡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한성부윤이 되었다. 그 뒤 경기도·경상도·전라도 등의 관찰사와 형조·예조·이조의 참판 등 내외직을 지내고, 1427년 형조판서에 올랐다. 1429년(세종 11) 판한성부사로 절일사(節日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1431년(세종 13) 좌군도총제가 되었다. 마음가짐이 굳세고 자신이 맡은 관직에 부지런하며 정성스러웠다.
[상훈과 추모]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이천의 설봉서원(雪峯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공도(恭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