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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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成模 |
영어음역 | Won Seongm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원산군(原山君) 원황(元滉)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원계검(元繼儉)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을 지낸 참찬 원호영(元虎英)이다. 아들로 원승길(元升吉)과 원이길 등이 있다.
[활동사항]
원성모(元成模)[1569~1636]는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여 선교랑 거산도찰방이 되어 벼슬길에 나서 현령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출병하여 사현(沙峴)[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모래네]에서 청나라 군사와 전투를 벌여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정왕산(正往山)을 점거하여 진(陣)을 쳤으며, 군율을 엄히 하여 덕물도(德勿島)[현 옥구도]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움을 벌였다.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자 큰 아들인 원승길과 막내아들인 원이길이 합세하여 3일간 혈전 끝에 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과부적으로 기력이 떨어지고 무기도 바닥이 나는 등 싸움의 형세가 계속 불리해져 삼부자가 같은 날 순절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배나루에 있었으나, 이곳 일대가 시화 지구 토취장에 편입되자 1990년경 본래의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선영으로 이장하였다. 이장을 위해 산역하였을 때 미라로 발견되었는데, 얼굴의 형태가 수염까지 그대로 있었고 전투 당시 입었던 속옷, 겉옷, 관복이 변색되지 않은 채 청군의 칼로 찔린 혈흔(血痕)이 스며 있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