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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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微 |
영어음역 | Wang M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상열 |
[정의]
고려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개성(開城). 태조 왕건의 아들인 동양군(東陽君) 왕원(王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 왕규질(王圭質)이다. 왕흥(王興)의 형이다.
[활동사항]
왕미(王微)[1365~?]는 교서감(校書監)을 지냈으며, 후에 제용감정(濟用監正)에 추증되었다. 조선 개국 후 사헌부대사헌 민개(閔開) 등이 왕씨를 한양 밖에 두기를 청하여, 공양왕을 비롯하여 고려왕조에 제사를 지낼 일족 일부를 제외한 왕씨를 강화와 거제에 두게 하는 조처가 단행되었다. 그러나 왕미는 외가의 성씨인 윤씨로 바꾸고 동생 왕흥과 함께 중원[현 충주시]에 숨어 살았다고 전한다. 이로써 현존하는 개성왕씨의 대부분이 왕미의 후손이므로 개성왕씨의 중시조라 할 수 있다. 개성왕씨 등은 1930년대 경기도 시흥시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114번지 구지정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그동안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였으나, 인척이 지석(誌石)을 찾음으로써 알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