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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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竣 |
영어음역 | O Jun |
이칭/별칭 | 여완(汝完),죽남(竹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가계]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여완(汝完), 호는 죽남(竹南).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역임한 오백령(吳百齡)이다.
[활동사항]
오준(吳竣)[1587~1666]은 1618년(광해군 10)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주서를 거쳐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세자시강원필선·홍문관수찬 등을 지냈다. 병자호란 뒤인 1639년(인조 17) 한성부판윤으로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어 심양(瀋陽)에 다녀왔고, 1643년(인조 21) 청나라 세조의 즉위에 즈음하여 등극부사(登極副使)로, 1648년에는 동지 겸 정조 성절사(冬至兼正朝聖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0년(효종 1) 예조판서로서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어 『인조실록(仁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형조판서·사헌부대사헌·세자시강원우빈객 등을 거쳐 1660년(현종 1) 의정부좌참찬이 되었다가 이어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써서 왕가의 길흉책문(吉凶冊文)과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사(公私)의 비명을 썼다. 특히 오준은 왕희지체(王羲之體)를 따라 단아한 모양의 해서를 잘 썼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시문집인 『죽남당집(竹南堂集)』이 있으며, 글씨로 아산의 충무공이순신비(忠武公李舜臣碑), 구례의 화엄사벽암대사비(華嚴寺碧巖大師碑), 회양(淮陽)의 허백당명조대사비(虛白堂明照大師碑)·이판이현영묘비(吏判李顯英墓碑), 광주의 의창군광묘비(義昌君珖墓碑), 일본 닛코사[日光寺]의 닛코산조선등로명[日光山朝鮮燈爐銘], 안성의 대동균역만세불망비(大同均役萬世不忘碑),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七長寺)의 벽응대사비(碧應大師碑) 등의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