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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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碩期 |
영어음역 | Gang Seokgi |
이칭/별칭 | 복이(復而),월당(月塘),삼당(三塘),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후기 금천현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지낸 강찬(姜燦)으로, 큰아버지 강순(姜焞)에게 입양되었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인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아버지이다.
[활동사항]
강석기(姜碩期)[1580~1643]는 김장생(金長生)의 제자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승문원에 들어갔으나 시세(時勢)에 불만을 품고 금천현에 있던 집으로 돌아가서 지냈다. 인조반정 뒤 교리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대사성·도승지 등을 거쳐서 1636년(인조 14)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1640년(인조 18)에는 우의정에 세자사부(世子師傅)를 겸하였다. 부승지로 있을 때 딸이 소현세자의 부인이 되었다.
민회빈 강씨는 병자호란 후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瀋陽)에 볼모로 갔다가 1644년(인조 22)에 돌아왔으나, 심관(瀋館)[심양에 있던 민회빈 강씨의 거주지]에서의 영리(營利)[뇌물 외교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로 인조의 불평을 샀다. 이후 소현세자가 역위(易位)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던 중 인조에 의해 독살된 뒤 저주 사건[역모]의 주모자로 모함되어 사사되었다. 그것을 ‘민회빈 강씨의 옥’이라 하는데, 앞서 죽은 강석기는 관작을 추탈당하고, 그의 부인은 처형되었으며, 아들 강문성(姜文星)과 강문명(姜文明)은 장살(杖殺)을 당하는 등 가문이 멸문의 화를 당했다. 숙종 때 복관(復官)되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