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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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東善 |
영어음역 | Bak Dongseon |
이칭/별칭 | 자수(子粹),서포(西浦),정헌(貞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후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 할아버지는 사간을 지낸 박소(朴紹)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역임한 박응천(朴應川)이다. 금주군(錦州君) 박정(朴炡)이 아들이다.
[활동사항]
박동선(朴東善)[1562~1640]은 28세 때인 1589년(선조 22)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었다. 남포현감으로 재직할 때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어 공적이 제외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성균관직강·예조좌랑·병조좌랑·사복시정 등을 차례로 지내고, 경기도도사와 수안군수에 이어 인천부사와 부평부사·남양부사 등을 지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이 있었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그를 대사간에 임명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사양하였다. 이후 참의에 이어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613년(광해군 5)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반대하고 시골로 내려가 은거하였다가 인조반정으로 대사간이 되어 다시 복직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위하여 강화로 갔으며, 형조판서·좌참찬·우참찬·지돈령부사·지중추부사겸지경연사·지의금부사·춘추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늙고 병든 몸으로 왕손을 호종하고 강화의 교동, 호서 등지로 피난했다가 난이 끝난 뒤 한성으로 돌아와 좌참찬이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서포기문(西浦記聞)』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헌(貞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