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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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自新 |
영어음역 | Yu Jasin |
이칭/별칭 | 지언(止彦),류자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지언(止彦). 아버지는 공조판서 유잠(柳潛)이며, 어머니는 증호조참판 정승렴(鄭承廉)의 딸이다. 광해군의 장인이다. 아들로 유희분(柳希奮), 유희발(柳希發), 유희량(柳希亮) 등을 두었다.
[활동사항]
유자신(柳自新)[1541~1612]은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 태릉참봉을 거쳐 돈령부직장(敦寧府直長)·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평강현감·호조좌랑·김포현령 등을 역임하였고, 1579년(선조 12) 형조정랑·김제군수를 거쳐 1585년(선조 18) 장악원첨정 겸 내승(掌樂院僉正兼內乘)이 되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특명으로 안악현감에 임명되어 역도들을 잡아 처리하고, 광주목사에 제수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가(大駕)를 호종하고 평양에서 묘사주(廟社主)를 모시고 광해군을 따라 강원도 방면으로 나갔다가 그해 겨울 성천으로 나왔는데, 특명으로 동지돈령부사에 제수되었다. 그 뒤 성천부사와 개성유수에 이어 한성부우윤으로 있을 때인 1598년(선조 31) 명나라 군사를 구타한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그 뒤 한성판윤과 도총부도총관 등을 지냈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부원군에 올랐으나, 평소와 다름없이 겸공(謙恭)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에 근신하고 권문세가로 행세하는 일이 없었다. 1610년(광해군 2) 기로소에 들어갔다. 인조반정 때 관작과 봉호가 추탈되었으며, 아들 유희분·유희발·유희량 등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상훈과 추모]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보국숭록대부 영돈령부사 문양부원군(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文陽府院君)에 진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