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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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大任 |
영어음역 | Gwon Daeim |
이칭/별칭 | 홍보(弘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계화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출신인 선조의 부마.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홍보(弘輔). 예조판서를 역임한 권협(權悏)의 손자로, 아버지는 우의정을 역임한 권신중(權信中)이다. 어머니 이씨(李氏)는 세종의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7세손으로, 사평(司評) 이정필(李廷弼)의 딸이다. 부인은 선조와 정빈민씨(靜嬪閔氏) 소생의 정선옹주(貞善翁主)이다.
[활동사항]
권대임(權大任)은 정선옹주와 결혼하여 부마도위 길성위(駙馬都尉吉城尉)에 봉해졌다가 길성군(吉城君)에 습봉(襲封)되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산56번지에 거주하였는데, 정선옹주가 이곳으로 출가하면서 이 일대가 옹주의 사패지(賜牌地)로 내려져 궁궐과 같은 큰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궁동이란 마을 이름도 비롯된 것으로 전한다. 권대임 신도비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재주와 기예가 숙성하고, 특히 글씨를 잘 써서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궁동 산1-22번지 안동권씨 문중 묘역에 정선옹주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할아버지 권협의 묘가 위쪽에 있다. 묘는 단분합장(單墳合葬)이고, 봉분에는 호석(護石)을 둘렀다. 앉은 방향은 남향이다.
[상훈과 추모]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있을 때 공주로 피난한 인조를 수행하여 봉헌대부에 올랐다. 1625년 병조호란 때도 인조를 수행하여 숭덕대부에 올랐으며, 다시 도총관이 되었다. 1645년(인조 23) 10월 26일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선무원종공신이라 하여 수록대부(綏祿大夫)에 추증하니 정1품이 되었다. 1714년 제작된 권대임 신도비가 권대임의 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허목(許穆)이 글을 짓고, 이징구(李徵龜)가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