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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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順汀 |
영어음역 | Yu Sunjeong |
이칭/별칭 | 류순정,지옹(智翁),청천(菁川),무안(武安),문정(文定)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홍민 |
[정의]
조선 전기 구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할아버지는 유이(柳怡)이고, 할아버지는 유자해(柳子偕)이다. 아버지는 목사 유양(柳壤)이며, 어머니는 정즙(鄭楫)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사항]
유순정(柳順汀)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는데, 특히 활을 잘 쏘아서 무인 중에서도 그와 비교할 자가 드물었다. 1487년(성종 18)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전적에 임명되었다. 그 뒤 훈련원정으로서 전라도 지방에 침투한 왜적을 수색, 포획하는 데 힘썼고, 1491년(성종 22) 함경도평사로서 도원수 허종(許琮)의 막료가 된 뒤 평안도평사를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사헌부헌납으로 임사홍(任士洪)의 잔악함을 논박하고, 평안도절도사 전림(田霖)의 권력 남용을 추궁하는 한편, 야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그 뒤 홍문관교리가 되었는데, 문신임에도 활솜씨가 뛰어나 특별히 부응교에 배수되었다. 이어 사헌부집의를 거쳐 의주목사로 나아가 압록강 연안의 야인 정벌 때 도원수의 종사관으로 적정 탐지에 큰 공을 세웠다. 아울러 군자 확보와 성곽 수축 등 군비 강화에 힘썼다.
1503년(연산군 9) 공조참판으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밤 사냥에 대해 진언했다가 임사홍의 모략으로 추국을 당하였다. 1506년(연산군 12) 이조판서로서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과 함께 중종반정을 모의, 거사하여 성공하였다. 이어 병조판서로서 영경연사(領經筵事)를 겸임하여, 폐지한 경연 부활에 앞장섰다. 얼마 뒤 우의정으로 승진하고, 병조판서를 겸임하였다.
1507년(중종 2) 이과(李顆) 등이 견성군(甄城君)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처리하였다. 이듬해 평안도 인산(麟山)과 강계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자를 강화하였으며, 이어 좌의정이 되어 당시 경기도 인천·김포·통진 일대에 횡행한 강도를 박영문(朴永文)·유담년(柳聃年)을 포도대장으로 삼아 처리하게 하고 유민의 안집책(安集策)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1510년(중종 5) 경오왜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가 되어 병사를 총괄하였으며, 다시 도원수로서 현지에 출동하여 삼포(三浦)의 난을 평정하고, 각 포의 비왜방략(備倭方略)을 마련하였다. 이때 대간들로부터 재물을 늘인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받았으나 오히려 군공을 치하 받아 영의정에 올랐지만 두 달 만에 병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산43-31~32번지에 조성된 진주유씨(晉州柳氏) 묘역에 마련되어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에는 유순정과 유순정 신도비, 그 아래에 부인 안동권씨의 묘가 있고, 좌측으로 아들인 유홍(柳泓)의 묘와 신도비, 그 아래에 후손인 진주유씨 집안의 여러 분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유순정 묘와 유홍 묘가 서울시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순정·유홍 부자 묘역은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부자 2대 공신 묘역으로, 조성 시기도 16세기 전반으로 상당히 이른 시기에 속한다. 특히, 유순정의 묘역은 조성 당시 왕족에게만 내려 주던 장흥고(長興庫)의 관곽(棺槨)을 사여할 정도로 국가적 관심 속에서 조성되어 공신 묘역의 조성 방식을 알게 하는 중요 자료이다.
[상훈과 추모]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으로 청주부원군에 봉해졌고, 다음 해 이과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정난공신(定難功臣) 1등에 봉해졌다. 시호는 무안(武安)이었다가 문정(文定)으로 개시(改諡)되었고, 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묘소에 마련된 유순정 신도비는 팔작지붕 옥개형으로, 4면 비이다. 비좌 윗면에는 복련을 장식했고, 전면에 안상 3구획, 측면에 안상 2구획을 새겼다. 비문은 한성부판윤 진천군(晉川君) 강혼(姜渾)이 찬(撰)하고,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서(書)했다. 또한 「유순정 초상」은 현재 몇 점 전해 오지 않는 16세기 초기의 초상화로 조선 전기 공신상의 전형을 보여 주는 동시에 바닥에 채전이 등장하는 최초의 예로 회화사적으로 가치가 커서, 2004년 8월 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 22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