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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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嵩墓 |
영어음역 | Nosung Myo |
영어의미역 | Tomb of No sung |
이칭/별칭 | 경평(敬平)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 산 39|산 209|산 210 일원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홍민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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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단분 삼위합장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전기 |
관련인물 | 정원용|이윤덕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111 |
소유자 | 광산노씨 경평공파 대종회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천왕동에 있었던 조선 전기 문신 노숭의 묘.
[개설]
노숭(盧嵩)은 감찰지평(監察持平) 노준경(盧俊卿)의 아들로 본관은 광주(光州)이고 자는 중보(中甫), 호는 상촌(桑村)이다. 1337년(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414년(태종 14)에 사망하였다.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죽을 때 유언으로 아들들에게 불사(佛事)를 쓰지 말도록 하였으며, 조정에서는 3일 동안 조회를 중지하였다. 시호는 경평(敬平)이며 묘소가 구로구 천왕동에서 2009년 6월 6일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111번지로 이전하여 위치하였다.
[위치]
옥길로를 따라 천왕마을 방향으로 진행하다 옥길로의 끝부분에 위치한 대륜금속을 지나 왼쪽으로 난 길로 100m 올라가면 광주노씨 경평공파 종친회 사무실과 묘역이 있었다. 노숭 묘는 이 묘역의 상단 산39번지, 산209번지, 산210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변천]
이전에는 신도비만 있고 비석이 없어 누구의 묘인지 모르고 ‘노 정승 묘’라고 불러오다 노숭의 묘임이 밝혀졌다. 1979년에는 후손들이 노숭의 묘 앞으로 두 부인의 묘를 이장해왔고 묘역을 정비하여 지금에 이른다.
[형태]
노숭 묘는 단분으로 노숭의 두 부인의 묘와 삼위합장(三位合葬) 형태를 이루고 있다. 좌향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작은 장명등은 옛 석물이고, 그밖에 근래 건립한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문인석 2쌍, 신비석, 장명등 등을 갖추었다.
[금석문]
신비석 전면에 ‘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집현전대제학광주노공숭지묘낙성군부인김씨부좌영가군부인김씨부좌(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集賢殿大提學光州盧公崇之墓洛城郡夫人金氏祔左永嘉郡夫人金氏祔左)’라 새겨져 있다. 묘역의 입구에는 19세기 후반 영의정 정원용(鄭元容)이 짓고 이윤덕(李閏悳)이 글을 쓴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에 ‘선생역책후오백오십육년경술십월일립(先生易簀後五百五十六年庚戌十月日立)’이라 새겨진 것으로 보아 1970년에 건립한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2011년 상반기 영등포교도소가 구로구 천왕동으로 이전을 추진함에 따른 부득이한 사정으로 광주노씨 경평공파 종친회에서는 선조인 노숭의 묘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2009년 6월 6일에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211번지로 새로운 묘역을 조성하여 안장하였다. 노숭 묘뿐 아니라 그 아래에 있던 다섯째 아들인노상신(盧尙信)의 묘와 비, 석물도 그대로 이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노숭은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된 인물이다. 후손의 묘와 함께 묘역을 이루고 있어 그의 가계의 연구는 물론, 조선 전기 명문가의 무덤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