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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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花山烽燧臺 |
영어음역 | Gaehwasan Bongsudae |
영어의미역 | Beacon Fire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안홍민 |
[정의]
구로 지역에 있던 조선시대 봉수대.
[개설]
봉수대는 전근대의 대표적인 통신 수단으로, 특히 적군의 침략 등 위급 상황 시 그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되었던 구조물이다.
[건립경위]
봉수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고려 의종 때에 전국적으로 봉수 체계가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을 이용하여 소식을 알렸으며, 봉수의 운영을 위해 토지가 지급되었다. 전국의 모든 봉수는 서울의 남산을 중심으로 하여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봉수의 수가 전국적으로 650여 개에 달하였다. 그중에서 개화산 봉수대는 동쪽으로 서울 목멱산[남산] 제5봉과, 서쪽으로는 경기도 김포현 북성산과 응하였다. 전국적인 국방 정보망 구축을 위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의 전국 봉수의 거로(炬路) 중 제5거로에 속하는 봉수로 건립되었다.
[위치]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 방원중학교에서 북서쪽으로 난 길[개화산 등산로]을 따라 북쪽으로 850m 정도 올라가면 군부대 초소가 나온다. 여기서 초소를 통과하여 동쪽에 있는 2봉으로 이동하여 128.4m 삼각점 좌표가 설치된 곳으로 오르면 주변이 봉수대이다.
[형태]
봉수대는 지름 약10m인 원형의 연대가 확인되며, 삼각점이 설치된 모서리에는 연대 축조에 사용되었던 할석을 빼서 방형으로 받침대를 쌓아 일부 구간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원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각점이 있는 연대의 북쪽으로 철조망 너머에는 강서구청에서 개화산 봉수대 표석을 세운 곳이 있는데, 일부 석렬(石列)이 확인된다. 연대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지표에서 2m 이상 절개한 부분이 나타나는데, 그 상면에서 표토 주변에서 유물이 수습되었다. 또한 삼각점에서 동남쪽으로 철조망이 가설된 지점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도 기와와 도기편이 수습되었다.
[현황]
현재 봉수대의 원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터 정도만이 확인될 뿐이다. 그리고 현재 군부대 내에 위치하여 일반의 접근은 쉽지 않다. 한편 봉수대 인근에서 기와편, 백자편, 경질도기편 등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개화산 봉수대는 서울에서 원형의 유구가 일부 잔존한 봉수대로서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군부대 내에 위치하여 시나 문화재 관리 당국의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힘든 상황이다. 군부대 및 행정 관서와의 협조 아래 발굴 조사 등의 종합적 학술 조사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