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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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川府 |
영어음역 | Incheon-bu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오계화 |
[정의]
1895년 설치되어 구로 지역을 관할하였던 근대 개항기의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1895년(고종 32) 5월 26일 개화파 정부는 지방 행정의 효율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지방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농민 전쟁으로 폭발하였던 당시 향촌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 과다한 지방 관원의 수를 대폭 축소하고, 지방 행정 업무를 분화함으로써 지방관의 권한을 줄였다.
그러나 1895년 개편 내용 중 23부제는 갑오개혁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급박하게 공포된 것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종래의 뿌리 깊은 8도제를 무시한 인위적인 획정이었다는 점에서 원활한 시행과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결국 1년 만에 폐지되고 13도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내용]
인천부(仁川府)는 부평군·김포군·양천군·시흥군·안산군·과천군·수원군·남양군·강화군·교동군·통진군·인천군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다. 관찰부는 제물포에 두었고, 관찰사 1명, 참서관 1명, 주사 15명, 경무관 1명, 경무관보 1명, 총순 2명 이하와 순검 70명을 배치하였다. 인천부 산하의 군 가운데 부평군과 시흥군이 지금의 구로구 지역에 해당한다. 부평군 수탄면의 고척리·개봉리·오류리·궁리·온수리·천왕리와 옥산면 항리, 시흥군 상북면의 구로1리·구로2리·사돈리·도야미리·원지목리 등이다.
[변천]
1896년 도제는 8도제에서 13도제로 변화되었다. 이전의 8도 중 함경도·평안도·충청도·경상도·전라도 등 5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13도로 하였다. 또한 23부제에서 군으로 격하되었던 한성을 특별히 도와 동격의 부로 하였으며, 도 아래 단위를 다시 부·목·군으로 나누어 7부[광주·개성·강화·인천·동래·덕원·경흥], 1목[제주], 331군으로 구획하였다. 그 결과 인천군은 인천부로 격상하였고, 지금의 구로구 지역을 포함하는 부평군과 시흥군 등은 경기도 소속으로 환원되었다.
이후 개항장이었던 인천부는 일본인 거주지 중심의 도시 지역과 농어촌 지역으로 양분되면서,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을 통해 부역(府域)이 일본인 시가지 중심으로 크게 축소되었다. 농어촌 지역이 분리되어 신설된 부천군에 편입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1895년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은 근대적 중앙 집권 국가 확립을 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적 향촌 사회의 질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으며, 일본의 침략 의도와도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개편을 통해 지금의 구로구 다수 지역이 속한 부평도호부는 군으로 강등되고, 개항 이후 중요성이 강화된 인천은 부로 설정되어 부평군이 이에 속하게 되는 등 지역 간 지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