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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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川郡桂南面 |
영어음역 | Bucheon-gun Gyenam-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오계화 |
[정의]
1914년부터 1931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개설]
부천군 계남면은 1914년 신설된 부천군의 15개 면 가운데 하나로 계양산 남쪽 마을 내지 동리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부천군 계남면은 1914년 시행된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 방침에 따라 신설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는데, 군과 면의 수를 줄여 지방 행정 경비를 절약함과 동시에 개편된 행정 구역에 조선총독부의 구미에 맞는 새 인물을 취임시킬 수 있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또한 토지 조사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도 지방 체제의 개편을 통해 불명확한 동리의 경계와 월경지(越境地) 및 두입지(斗入地)[군현의 경계를 정할 때 자연적인 지세를 따라 결정한 데서 나타난 현상으로, 군현 경계선의 굴곡이 심한 구역] 문제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용]
19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부령 제111호에 따라 인천부의 관할 구역을 개항장으로 축소하였다. 그리고 인천부에 편입되지 못한 옛 인천군 지역, 부평군 일원, 강화군 관할의 신도(信島)·시도(矢島)·모도(茅島)·장봉도(長峰島), 남양군(南陽郡) 소속의 대부면(大埠面)·영흥면(靈興面)을 통합하여 부천군을 신설하였다. 부평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을 따서 부천군이라 명명한 것이다. 부천군 계남면은 이때 신설된 부천군의 15개면 가운데 하나로, 기존 부평군의 석천면·수탄면·옥산면을 통합하여 개칭한 것이다.
계남면은 모두 17개 동리로 구성되었는데, 고척리·개봉리·오류리·궁리·온수리·천왕리·표절리·조종리·벌응절리·항리·괴안리·소사리·범박리·구지리·상리·중리·심곡리가 그것이다. 구지리·상리·중리·심곡리는 기존의 부평군 석천면이 폐합된 것이며, 표절리·조종리·벌응절리·항리·괴안리·소사리·범박리는 부평군 옥산면에서 합쳐진 것이다. 고척리·개봉리·오류리·궁리·온수리·천왕리는 부평군 수탄면이 폐합 조치된 것이다. 이 가운데 고척리·개봉리·오류리·궁리·온수리·천왕리·항리 등이 오늘날 구로구에 해당된다.
[변천]
1930년 12월 읍제(邑制)가 제정되어 1931년 4월 1일부터 시행됨으로써 지방 제도전반에 걸친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41개 읍이 신설되고, 전국이 13도(道) 14부 218군 2도(島) 41읍 2,423면으로 구분되었다. 이때 부천군 계남면은 명칭이 소사면으로 개정되었다가 1941년 소사읍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973년 7월 소사읍은 부천시로 승격하였는데, 이에 앞서 오늘날 구로구에 해당하는 고척리·개봉리·오류리·궁리·온수리·천왕리·항리는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 구로구가 신설되면서 구로구로 옮겨졌다.
[의의와 평가]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은 향촌 사회의 구조 변화를 가져왔다. 행정 구획 개편은 단지 공간적 통폐합의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일제가 우리나라 고유의 자치성과 공동체성을 부정하는 가운데 일본의 정촌제(町村制)를 모델로 지방제도를 식민지적으로 재편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