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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98
한자 始興縣
영어음역 Siheung-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윤대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연도/일시 1795년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정의]

1795년부터 1895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 권94 강감찬전에 “강감찬의 옛 이름은 은천(殷川)인데 금주(衿州) 사람이다. 그의 5대조 강여청(姜餘請)이 신라조(新羅朝)부터 시흥군(始興郡)으로 옮겨와 사니 시흥(始興)금주이다”라고 하였다. 즉 강여청이 살았던 신라 말 고려 초 시기에 금주시흥이라고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금천(衿川)의 별호를 시흥으로 하였다는 기사가 있다[高麗改爲衿川(一作黔) (중략) 本朝太宗十四年甲午 革果川 倂爲衿果縣 數月而罷 又革陽川縣 倂爲衿陽縣 一歲而罷 丙申復爲衿川縣監 別號始興]. 또 『경기도읍지(京畿道邑誌)』「시흥군읍지」 군명조(郡名條) 시흥 하단의 주(註)에 “어느 때 명칭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未詳知何代名]”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로써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사용되었던 시흥이라는 지명은 금주와 혼용되어 사용되어진 듯하나, 그 정확한 위치와 지명의 유래는 현재의 사료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내용]

시흥현(始興縣)은 1795년(정조 19) 기존에 있던 금천현(衿川縣)의 명칭을 바꾼 것이다. 명칭을 변경한 이유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자주 찾은 것과 관련이 깊은 듯하다. 또 직접적인 이유로는 1795년 윤 2월 13일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주갑연이 거행되는 화성행궁으로의 행차 길과 관련지어 볼 수도 있다. 시흥현은 읍 이름이 바뀌면서 격(格)이 전보다 한 등급 승격하여, 금천현은 종6품의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는데, 시흥현에는 종5품의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변천]

시흥현은 1895년(고종 33) 지방 제도의 개편과 함께 시흥군으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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