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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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衿川縣 |
영어음역 | Geumcheon-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윤대준 |
[정의]
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통치 조직과 지방 제도에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조선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다져지자, 태종은 1413년에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다분히 고려왕조의 잔재를 불식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다.
태종은 각 도의 부관(府官)은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는 현감(縣監)으로 고쳤으며, 군이나 현에 ‘주(州)’자가 든 고을은 경주, 전주와 같이 종2품 부윤(府尹)이 배치된 부와 정3품 목사(牧使)가 배치된 목 이외는 모두 주 글자의 사용을 금하고 ‘산(山)’, ‘천(川)’, ‘해(海)’, ‘성(城)’, ‘원(原)’ 등으로 고쳤다. 이때 금주(衿州, 黔州)는 금천(衿川)으로 바뀌었다.
[내용]
금천현(衿川縣)은 본래 고구려 잉벌노현(仍伐奴縣)인데, 757년 경덕왕 때 한자식 이름인 곡양현(穀壤縣)으로 바뀌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 금주라고 고쳤고, 995년(성종 14) 지방 제도를 대폭 개편하여 도제(道制)를 시행할 때 군정(軍政)적 성격이 강한 단련사(團練使)를 설치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1005년(목종 8) 혁파되었다. 1018년(현종 9) 수주(樹州)에 예속시켰고, 1172년(명종 2) 감무가 설치되면서 수주에서 독립하였다. 조선 태종 14년에 과천과 병합하여 금과현(衿果縣)을 만들었다가 두어 달만에 혁파하고, 또 양천과 병합하여 금양현(衿陽縣)으로 만들었는데, 한 해만에 혁파하였다. 태종 16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현감으로 만들었고, 세조조에 과천과 병합했다가, 얼마 못 가서 복구하였다.
[현황]
오늘날의 구로구 지역은 조선시대에 금주 또는 시흥(始興)이라 불렸고 부평의 일부가 포함된다. 금천이라는 이름은 현재 서울특별시 금천구라는 지명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