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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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桂陽都護府 |
영어음역 | Gyeyang-dohob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윤대준 |
[정의]
1215년부터 1308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고려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명칭.
[관련기록]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고려시대 최고의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 지방관으로 부임한 기록이 실려 있다.
[내용]
계양도호부는 고려 전기에는 수주(樹州),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칭해졌다. 수주는 1150년(의종 4) 읍격(邑格)이 한 등급 높아져 안남도호부가 되었고, 1215년(고종 2) 계양도호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고려 전기의 도호부(都護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 지역에 설치되었는데, 안남에서 계양으로 바뀐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계양은 계양산에서 유래된 것으로, 계수나무와 회양나무가 자생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계양이 부평 지역 진산(鎭山)의 이름이었음은 여러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예종 때 이 지역 출신의 이위가 계양백(桂陽伯)으로 봉작된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전에도 이미 계양이라는 호칭이 있었음을 볼 때 계양은 일찍이 이 지역의 별호(別號)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1230년(고종 17) 기록에 여전히 안남부(安南府)로 불리고 있는 것을 보면 고려 후기에는 안남과 계양이라는 이름이 같이 쓰이면서 안남이라고 표시된 것 또한 계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따라서 안남에서 계양으로의 변화는 단순한 읍호의 개명일 뿐 행정적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계양도호부는 몽골의 침입 후인 1308년(충렬왕 34) 길주목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