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2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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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城 |
영어음역 | Hansung |
이칭/별칭 | 하남위례성,위례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오계화 |
[정의]
삼국시대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백제의 도읍.
[개설]
온조는 졸본부여에서 나와 한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백제를 세웠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 온조왕 즉위년 기사에 따르면, 온조가 처음 도읍한 곳은 하남위례성이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다른 기록은 온조 14년에 도읍을 한수(漢水)[현 한강] 이남으로 옮겼다고 하여 하남위례성이 첫 도읍지가 아닌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남위례성은 백제가 고구려에게 수도를 함락당한 475년까지 백제의 도읍이었다. 온조가 정착하여 한강 이남으로 옮기기까지는 13년간에 불과한 반면, 하남위례성은 500여 년간 도읍으로 기능하였다. 그 때문에 하남위례성이 사실상 백제의 첫 번째 도읍으로 인식된 듯하다. 하남위례성은 오늘날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일대와 몽촌토성 및 풍납동토성 등으로 비정되었는데, 근래에는 풍납동토성 등 서울특별시 송파구 일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성(漢城)은 위례성(慰禮城)의 다른 호칭이며, 한강 유역에 도읍하고 있던 시기 왕성을 포함하여 백제의 수도를 포괄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학계에서는 백제가 처음 도읍하여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공주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의 시기를 한성 시대라 지칭한다. 지금의 구로구 지역도 5세기경까지 백제 한성의 관할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록]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온조왕 즉위년 기사에 “온조는 한수 남쪽[河南]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이때가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嘉) 3년(B.C. 18)이었다”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온조왕 13년에는 온조가 “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하물며 이즈음 요망한 징조가 자주 나타나고 국모(國母)가 돌아가시니 형세가 스스로 편안할 수 없도다. 장차 꼭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길이 편안할 수 있는 계책을 도모하여야 하겠다”라고 한 기사가 전하며, 14년에는 “봄 정월에 도읍을 옮겼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개로왕 21년조 기사에 “가을 9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璉)[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왕도(王都) 한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성문을 닫고 능히 나가 싸우지 못하였다. 고구려인이 군사를 네 길[四道]로 나누어 양쪽에서 공격하였고, 또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놓아 성문을 불태웠다. 이에 인심이 대단히 불안해져서[危懼] 나가서 항복하려는 자도 있었다. 왕은 곤궁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기병 수십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났다. 고구려인이 쫓아가 살해하였다”라고 하였다.
[내용]
오늘날 구로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은 백제 한성의 관할 아래 있었는데, 백제 당시의 세부 명칭들은 자료로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현 구로 지역의 지명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하고 점령한 한강 유역에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이때 설치한 주부토군(主夫吐郡)과 잉벌노현(仍伐奴縣)이 구로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변천]
백제의 한성은 475년 고구려에 함락되었다. 한성이 위치하였던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점유한 이후 구로 지역을 포함한 주부토군·잉벌노현과 같은 군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내 신라가 지금의 구로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한성이 위치하였던 한강 유역에는 ‘새로운 주’란 의미의 신주(新州)가 설치되었다. 통일 후 한산주(漢山州)로 편입되었고, 한산주는 757년(경덕왕 16) 한주(漢州)로 변경되었다. 수도 한성을 함락당한 백제는 도읍을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옮겼고, 이후 다시 사비로 천도하였는데 지금의 부여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