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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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老洞 |
영어음역 | Guro-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영철 |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구로동은 옛날 마을에 노인 아홉 명이 오랫동안 살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영조 때까지는 경기도 금천현 상북면 구로리였고, 1795년(정조 19) 금천현이 시흥현으로 개칭됨에 따라 시흥현 상북면 구로리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전문 6조의 칙령 98호에 따라 시흥현이 시흥군으로 바뀌고 안산군·과천군과 함께 인천부 소속이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북면 구로리가 되었고,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구로리가 되었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59호에 따라 영등포구 구로리가 되었고, 1950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0호인 「서울특별시 동리 명칭 중 개정의 건」에 따라 영등포구 구로동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인 「동장 정원 및 명칭과 관할 구역 변경 조례」에 따라 구로1동·구로2동·구로3동으로 나누어졌고, 1975년 10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979호에 따라 구로4동이 신설되었다.
1977년 9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181호에 따라 구로1동이 구로1동과 구로5동, 구로4동이 구로4동과 구로6동으로 나누어졌고,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에 따라 영등포구에서 구로구가 분리 신설됨에 따라 구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조례 제158호에 따라 구로본동이 신설되었고, 2008년 5월 구로6동이 구로4동에 병합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구로본동이 구로2동에 병합되었다.
[현황]
구로동은 구로구의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2010년 9월 30일 현재 면적은 5.2㎢이며, 총 60,526세대에 142,669명[남자 72,131명, 여자 70,53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로1동~구로5동 등 다섯 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 금천구 독산동, 영등포구 문래동, 관악구 신림동, 서쪽으로 고척동, 남쪽으로 가리봉동, 광명시, 북쪽으로 신도림동 및 영등포구 문래동과 이웃하고 있다.
경인로와 남부순환도로가 지나고 가마산길·구로동길·공단로·신대방로 등의 도로망이 잘 발달하였으며, 경부선과 경인선이 지난다. 지하철 1호선의 신도림역·구로역·구일역, 지하철 2호선의 신도림역·대림역·구로디지털단지역이 들어선 교통의 중심지이다. 구로2동에 구로구 행정의 중심인 구로구청과 구로경찰서, 구로3동에 흔히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구로수출산업단지 제1단지와 구로기계공구상가, 구로5동에 AK플라자[구 애경백화점]가 들어서 있다.
이처럼 구로동은 일찍부터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여 도시화가 진전됨으로써 구로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이주민이 많다. 따라서 구로동의 자연마을 명칭이나 옛 지명은 원주민의 이주와 공단을 중심으로 한 급격한 신도시 형성으로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고, 공단 건설 이전의 한적한 전원 풍경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은 공단 위주의 공업 지역에서 탈피하여 점차 쾌적한 주거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추세이다.
구로동은 이른바 구로공단으로 불리는 구로수출산업단지가 있던 곳이어서 공장 지대를 연상시키는데, 현재는 대부분이 금천구로 이관되었고 제1단지만 남아 있다. 구로동이 공단으로 육성된 이유는 이 지역이 경부선과 경인선이 지나고 수도권 전철과 경인고속국도에서 모두 1㎞ 이내에 자리 잡고 있어 원자재의 반입과 수출 화물 선적, 노동자의 출퇴근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1963년 공단 터가 확정된 뒤 1965년 착공하여 1967년에 준공된 제1단지의 총면적은 약 450,000㎡로 식료품·섬유·목재·인쇄·석유화학·비금속·1차 금속·조립 금속 관련 업체가 입주하여 있으며, 노동자 수는 1987년경 15,000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약 11,000명으로 줄었고, 지금도 공장들이 외지로 이전하고 있는 추세이다.
구로동 635-8번지 일대의 공장들이 이전한 뒤 들어선 구로기계부품유통단지는 대지 면적 약 99,173.55㎡, 총면적 165,289.26㎡ 규모로 영등포기계공구상가와 함께 주요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청계천 등지의 부품 상가들을 주로 입주시킬 계획으로 조성된 구로기계부품유통단지는 도심 인구의 교통 집중을 억제하고 도심부의 적정 시설을 외곽으로 이전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구로구의 새로운 상권으로 육성되고 있다.
구로구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꼽히던 애경백화점은 1993년 8월 30일 허가를 받아 1994년 9월 4일 영업을 개시하였다. 총면적 약 94,000㎡, 매장 면적 약 22,388㎡의 지하 5층, 지상 8층 규모로 모두 453개 점포가 입점하여 있으며, 병원·문화센터 등도 함께 갖추고 있다. 구로역과 인접하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한 까닭에 구로구의 중심 상권으로 발전하였다. 2009년 상호명을 AK플라자로 변경하였다.
구로동에 전해 오는 자연지명으로 각만이마을, 구루지마을, 늑대다리, 주막거리, 상나무재 등이 있다. 각만이마을은 현재 구로5동주민센터 서쪽 애경백화점 오른쪽에 있던 마을로 풍수가들이 앞으로 이 지역에 수만 호의 가옥이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한 데서 붙인 이름이다. 예언대로 지금은 많은 건물이 들어서서 인구 밀도가 높고 유동 인구도 많은 지역이 되었다. 각만이마을 뒷동산을 각만이동산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는 숲이 우거졌다고 한다.
구루지마을 뒤쪽에는 산이 솟아 있고, 산에서 흘러내린 크고 작은 시내에 많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중 구루지마을 뒤쪽에 해당하는 지금의 기아산업 중기사업소 정문 앞으로 흐르는 넓은 내에는 다른 곳과 달리 토교(土橋)가 놓여 있었다. 근처의 야산이 낮기는 하나 당시에는 워낙 숲이 무성하였고 마을 뒤쪽이라 후미진 까닭에 한낮에도 부근에 늑대가 많았으며, 또 도둑들이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의 금품을 가로채기 일쑤여서 이 다리를 늑대다리라고 불렀다. 지금은 복개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늑대다리 부근 경인로 변에 주막과 대장간을 포함한 서너 채의 집이 있어 주막거리라고 불리었는데, 현재의 경인로 앞 기아산업 중기사업소 일대에 해당된다. 이 주막거리에서 멀지않은 곳에 경부선과 경인선의 분기점이 되는 구로역이 있었는데, 옛날의 주막이 오늘날의 역사(驛舍)가 된 우연치 않은 예이다.
구로동 523-29번지에 있던 상나무재에서 늑대다리로 가려면 오른쪽은 산이고 왼쪽은 논인데, 그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늑대다리에 거의 다가서면 산 밑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이 있었다. 이 샘물이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근 마을 사람은 물론 먼 곳에서도 퍼다 먹었으며,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이 샘에 고사를 지내는 사람도 많았다. 이 샘물은 특히 옻 오른 사람이 마시면 백발백중으로 나았기 때문에 옻우물약수터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