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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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乙丑年大洪水 |
영어음역 | Eulchungnyeon Daehongsu |
영어의미역 | The Great Flood in 1925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손승호 |
[정의]
1925년 구로 지역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홍수.
[발단]
1925년 을축년(乙丑年)에는 우리나라에서 네 차례의 홍수가 발생하였으며, 이를 을축년 홍수 또는 을축년 장마라 부른다. 1차 홍수는 대만 부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태풍]이 7월 11일과 12일에 우리나라 중부 지방을 통과하면서 발생하였고, 2차 홍수는 대만 부근에서 형성된 열대성 저기압이 우리나라 황해도 북부를 지나면서 그 우측 반경에 포함된 임진강과 한강 유역에 집중호우를 뿌리면서 발생하였다. 3차 홍수는 8월에 중국 양쯔 강 유역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대한만 일대를 지나면서 북한에 집중호우를 뿌렸고, 4차 홍수는 마리아나(Mariana) 제도 부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이 9월 6일 남부 지방을 지나면서 주요 하천이 범람하였다.
이와 같은 4차례의 호우로 전국적인 피해는 사망자 647명, 가옥 유실 6,363호, 가옥 붕괴 1만 7045호, 가옥 침수 4만 6813호에 달하였다. 당시의 범람 면적은 19만ha를 상회하였다. 이러한 홍수 피해로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달하는 1억3천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한강 유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경과]
우리나라를 휩쓸고 간 을축년 대홍수는 10여 일간의 장마로 전국에 걸쳐 1년간 내릴 비의 80% 정도인 700~970㎜의 비를 뿌렸고, 장마전선이 한 달 가까이 우리나라에 머무르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1926년에는 현재의 서울시 송파구 송파근린공원에 을축년 대홍수비가 건립되었다.
[결과]
4차례의 홍수 가운데 구로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차 홍수와 2차 홍수이다. 1차 홍수로 인한 물이 빠지기도 전에 2차 홍수가 연달아 발생함에 따라 한강 중상류 지방에는 500~60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이 범람하였으며, 한강의 수위는 뚝섬 13.59m, 인도교 11.66m, 구 용산 12.74m로 사상 최고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영등포·용산의 제방이 넘쳐 안양천이 범람하였으며, 현재의 광명 일대에서부터 구로구·금천구·영등포구 일대는 진흙 바다로 변하였다. 또한 불어난 물로 인해 구로구를 비롯한 이 일대의 주택이 대부분 물에 잠기었다. 이로 인해 안양천 주변 지역의 침수 피해를 줄이고자 자연제방 형태로 존재하던 안양천 제방을 인공 제방 형태로 보강하여 새롭게 축조하였다.
[의의와 평가]
을축년 대홍수는 구로 지역에 발생했던 기록적인 수해 피해 사건 중 하나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로구를 포함한 한강 일대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안양천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에 인공 제방을 건설하여 수로를 재정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