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B03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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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용 |
[종친 간 우의가 돈독하기로도 이름나]
선산김씨[일선김씨]는 대종회 아래 18개의 지파(支派) 종친회와 전국의 지역별 종친회로 나뉜다. 개실마을 사람들은 점필재 선생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문충공파(文忠公派)에 속한다. 동시에 개진면 이남리의 화이군파와 더불어 고령군 지역 종친회를 구성하고 있다.
개실마을 사람들은 종친 간 우의가 돈독하기로 소문나 있는데, 이를 통해 조상을 선양하고 종친 개개인의 성취와 마을 발전을 이끌어 냄으로써 지역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종친의 우의를 다져 웃음꽃을 피우는 마을! 그러한 역할의 중심에는 종친회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온 종친회장 김천수[1944년생] 씨가 있다.
[공부하는 것보다 돈 버는 게 급했어요]
김천수 씨는 점필재 선생의 16세손으로 일제 막바지에 7남매[4남 3녀] 중 큰아들로 개실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령에서 쌍림초등학교와 고령중학교를 마친 후 대구로 유학 갔다. 경북대학교 문리대학 2학년에 재학 중 간부 후보생으로 장교로 입대해서 3년 4개월을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경제 사정으로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했다.
26세에 결혼한 김천수 씨의 신혼집은 대구로 유학 온 여섯 명의 동생들로 항시 북적거렸다. 맏이로서 동생들을 공부시켰고, 공부를 마친 후에는 결혼까지 시켜야 했다. 김천수 씨는 독학으로 취득한 7개의 기능공 자격증을 바탕으로 상당한 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의 수중에는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흘러가고 보류해 둔 자신의 공부는 점점 멀어져 갔다. 2009년 김천수 씨는 45년 만에 비로소 명예학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구슬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회사를 일구다]
김천수 씨는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플라스틱 표찰을 제작하는 지금의 ‘환주산업(環珠産業)’을 1995년에 설립했다. 그는 이전까지 알루미늄이던 표찰을 최초로 플라스틱으로 대체함으로써 표찰 산업의 한 획을 그었다. 회사의 이름과 같이 구슬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회사를 일군 것이다. “플라스틱으로는 대한민국 제1호입니다. 관련 특허도 4개나 땄어요.”라는 그의 말 속에는 원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배여 있었다.
김천수 씨의 사업은 경제 불황에도 끄떡 않고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생산품은 지역을 넘어 전국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갔다. “1천 종의 제품이 있고, 전국 1천 곳에 거래처가 있으므로 내 죽기 전에는 절대 망하지 않아요.”라는 말은 15년간 그가 얼마나 사업의 밑바탕을 견실하게 다져 왔는지를 말해 준다. 그런 만큼 이제는 사업 운영을 둘째 아들에게 맡겨 두고 종친회 일에 적극 나설 정도의 여유를 갖는다.
[자손 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다한다는 생각으로 살지요]
선산김씨[일선김씨] 고령종친회는 1993년에 결성됐다. 2년 임기의 1대와 2대 종친회장은 ‘고령기화’를 경영하는 화이군파 김은동 종원(宗員)이 맡았다. 1997년에는 김천수 씨가 제3대 종친회장을 이어받았다. 돈과 시간이 드는 자리여서 모두들 맡지 않으려 하지만, 자손 된 도리를 조금이나마 다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김천수 씨는 지역 종친회를 대표하여 대종회를 비롯한 각 지역 종친회에 참여한다. 부산대학교[밀양캠퍼스] 점필재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학술 대회에도 참여하고 찬조금도 지원한다. 매년 7월에는 종친회 모임을 개최하여 종원들의 내부 결속을 꾀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 근년에는 개실마을 문충공파 파보(派譜)를 만들었다.
김천수 씨는 삶에서 가장 뜻있게 생각하는 두 가지를 파보의 이름자 밑에 달았다. 하나는 45년 만에 받은 ‘경북대학교 명예학사’이고, 다른 하나는 ‘환주산업 창업’ 내용이다. 어려운 가세에 7남매의 큰아들 역할을 다하느라 못 다한 공부가 그만큼 한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3남매의 자녀 교육에는 남다른 관심을 쏟아 약사[큰딸], 한의사[사위], 공학박사[큰아들], 환주산업 상무[둘째 아들] 등으로 키워 냈다.
김천수 씨는 종친회 발전을 위해 종친회장 자동 승계 방안도 구축했다. 종친회장 아래 선임 중인 2개 지파 부회장 각 1인 중에서 교대로 회장을 맡게 한 것이다. 개실마을 전통놀이 체험관에서 개최된 2009년 9월 12일의 종친회 모임에는 고령군수도 다녀갔으며, 200여 명의 종친들이 참여하여 일가로서의 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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