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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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二君 |
영어음역 | Han Igun |
이칭/별칭 | 한의균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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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97년 |
몰년 | 1938년 |
본관 | 청주 |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한이군(韓二君)[1897~1938]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한의균으로도 불렸다.
[활동사항]
한이군은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같은 마을의 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한광룡(韓光龍) 등과 함께 도진리에 사는 박기로(朴基魯)에게서 도진리의 만세 운동 상황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박기로가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이 독립운동을 일으켜 독립할 때”라고 강조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한이군을 비롯한 청년들은 마을 사람들과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만세 시위를 하였다.
이날 밤 11시에 다시 모인 5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은 밤늦도록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튿날 10여 명의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그중 박정열(朴貞烈)·박재후(朴在厚)·정만식(鄭萬植)·구갑출(具甲出) 등은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한이군을 비롯한 만세 운동을 주도한 6명이 검거되어 한이군·한용발·도말용·박용학·한광룡 등 5명은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고, 박기로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