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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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淑夏 |
영어음역 | Jeong Sukha |
이칭/별칭 | 숙남(淑男),월호(月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초명(初名)은 숙남(淑男), 호는 월호(月湖). 현조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1350~1418]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였으며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많이 살았다.
고조할아버지는 경산현령 정효경(鄭孝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좌리공신(佐理功臣) 고양군수(高陽郡守) 정수(鄭穗)[1435~1497]이며, 할아버지는 정인준(鄭仁俊)이다. 아버지는 종사랑 정건(鄭謇)이며, 어머니는 원주변씨(原州邊氏) 찰방 변사신(邊士信)이다. 동생은 정숙도(鄭淑度)이다. 부인은 두 명을 두었는데 돈령부지사를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된 임호신(任虎臣)의 딸 풍천임씨(豊川任氏)와 여흥민씨(驪興閔氏) 참봉 민개(閔愷)의 딸이다.
[활동사항]
정숙하(鄭淑夏)[1541~1599]는 1564(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2년(선조 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전공을 세웠고, 1594년(선조 27) 청주목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승정원동부승지로 있으면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군사들의 의총(義塚)을 만들 것을 상소하였다. 이어 승정원우부승지를 거쳐 승정원좌승지에 임명되었고,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그곳의 정세를 왕에게 보고하였다. 1596년(선조 29) 승정원좌승지를 거쳐 이듬해 병조참의로 승진하였다. 1598년(선조 31)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며, 1599년 승정원좌승지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의 양원촌(養源村)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