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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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衙里 |
영어음역 | Go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대가야 때 관청이 있었다 하여 고아리(古衙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고령군 읍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치사리를 병합하여 고아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하면서 고령읍 고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고령읍 고아리가 되었다. 2015년 4월 2일 고령읍이 대가야읍이 되면서 대가야읍 고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의 대가천(大加川), 남쪽의 소가천(小加川)·안림천(安林川)[일명 용담천]이 동남쪽 끝자락에 모여 회천(會川)[일명 모듬내]을 이루어 흐른다. 대하천 범람원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 골안들, 덤모퉁잇들, 하짓들, 황샛들 등의 들이 형성되어 있다. 서부와 북부는 가야산(伽倻山)에서 동남으로 뻗은 산줄기가 북두산[687.9m], 미숭산(美崇山)[734m], 주산(主山)[310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자락에 해당한다. 이 산줄기 자락은 깊고 긴 계곡을 형성하여 큰골마을이 들어서 있고, 큰골 계곡 변에 고령 지산동 고분군(高靈池山洞古墳群)이 있다.
[현황]
2010년 4월 기준 면적은 1만 5000㎡로 농지 7,000㎡, 임야 5,000㎡, 기타 3,000㎡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476세대에 1,063명(남자 508명, 여자 5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아1리·고아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고아동·골안·내수말·치사리·배울·피병사골·빙고 등이 있다. 농산물로 딸기를 비롯한 시설 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며, 대가야 농촌 특구 조성 사업이 시행 중이다.
문화 유적으로는 1921년 박지화(朴芝華)가 선산을 위하여 지은 이수정(二水亭), 대가천과 안림천 합류 지점 부근의 대가야 조선소 터, 고아리 고분군(古衙里古墳群), 1992년 7월 중요민속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보부상유품(褓負商遺品), 사적 제165호인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高靈古衙洞壁畵古墳) 등이 있다.
고아리 산13번지에 있는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은 1963년 무덤에서 그림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시신을 넣어 두는 석실을 만든 방법을 보면 북쪽의 좁은 벽을 똑바로 쌓아 올렸고, 동쪽과 서쪽의 긴 벽은 위로 향할수록 좁아지도록 쌓아 올려 천장에는 판자 모양의 큰 돌을 일렬로 덮었다. 남쪽에는 석실의 천장보다 낮은 위치에 무덤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인 연도가 있다.
석실 벽면에는 회칠을 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모두 박락되었고, 석실과 연도의 천장에는 붉은색·초록색·갈색을 사용하여 연꽃을 그린 그림이 잘 남아 있다.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은 옛 가야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벽화고분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무덤의 구조상 공주에 있는 백제 송산리 벽화고분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6세기경으로 보고 있다.